조각에서 물질은 필연적이다. 조각의 본질이 물질을 다루는 것이고, 물질 그 자체로부터 조각은 태어난다.
고(故) 김인겸(1945~2018)은 이 같은 조각의 정의를 해체하며 현대미술사에서 선명한 궤적을 남긴 조각가다. 그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물질을 넘어 정신적 영역을 열어가는 조각'이라 일컬었다. 존재하지 않음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그의 작품은 조각을 '사유의 공간'으로 확장한다.
대구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공간의 시학'은 그가 73년 국전에 입선하며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이래, 40여 년 간 이어온 조각과 드로잉, 설치형 프로젝트 등 전 생애에 걸친 예술 여정을 아우른다.
전시장 로비에는 그가 88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묵시공간'을 볼 수 있다. 당시 전시 이후 37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된 이 작품은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한옥의 결구 방식을 차용해 만든, 조각으로 이뤄진 조각이다.
로비 중앙의 '묵시공간-존재'는 7개의 작품을 모았다. 녹슨 철과 청록색 브론즈, 투명 아크릴, 불에 탄 나무 등 각기 다른 물성으로 제작한 의자 형태의 작품들이, 윗면이 없는 철제 테이블을 중심으로 모여있다. 존재가 남긴 흔적을 통해, 부재(不在) 속에서 존재를 사유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95년 한국관이 첫 문을 연 제46회 베니스비엔날레에 윤형근, 전수청, 곽훈 등과 함께 참여했다. 3전시실에서는 당시 출품했던 작품 '프로젝트21-내추럴 네트'의 모형과, 작가가 직접 촬영한 한국관 설치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이에 앞서 1992년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었던 전시 '프로젝트-사고의 벽' 모형도 현장 촬영 영상과 함께 전시된다. 이 두 프로젝트는 그가 기존의 조각을 뛰어넘어, 설치로 조형의 지평을 확장한 중요한 지표가 된 작품이다.
인당뮤지엄 관계자는 "두 모형은 작가가 직접 제작한 것으로, 전시 준비 단계에서 언제나 해당 전시공간의 모형을 만들고 그 안에 작품을 배치해보곤 했던 작가의 치밀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며 "특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작 '프로젝트21-내추럴 네트' 모형은, 리모델링 하기 전 개관 당시 한국관의 모습을 담고 있어 사료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베니스비엔날레 전시 이후 1996년 프랑스 퐁피두센터로부터 초청을 받아, 8년 간 프랑스에 체류하며 작업했다. 대형 작업을 하기 어려웠던 환경에서 그는 면으로 입체를 만드는, 자신만의 회화적 조각을 만들어나갔다. 특히 이 기간 제작한 작품 중 3점의 '드로잉 스컬프처'가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되는데, 4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전시에서는 그가 큰 덩어리의 범주 내에 있던 전통적인 조각을 탈피하고, 평면과 입체, 실상과 허상, 물질과 정신, 존재와 부재 등의 개념을 질문하고 그 경계를 넘나든 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생전 "물질은 유한하지만 정신은 무한하다"며 "물질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 즉 무한을 담고 있는 것을 탐구하고자 했다"는 말을 남겼다. 또한 "나의 작품은 물리적인 실체를 점차 덜어내고, 유한한 것에서 무한한 것으로 가는 것을 추구한다. 삶 역시 육체의 유한함에서 영적으로 무한한 부분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직접 남긴 얘기들은 전시장 입구, 2017년 수원시립미술관에서의 대규모 전시 당시 남긴 인터뷰 영상에서 들을 수 있다.
김정 인당뮤지엄 관장은 "이번 전시는 조각이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인식하게 하고, 사유하게 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며 "공간과 사유, 존재의 의미를 재조립한 예술가의 여정을 통해, 오늘날 예술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깊이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026년 1월 17일까지 이어지며 일요일은 휴관한다. 053-320-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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