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나는 기술 융복합 공연이 만들어낸 새로운 무대 감각을 이야기했다. 음악,영상,조명이 서로 얽히며 무대는 여러 감각이 복합되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서 연주하며 떠오른 질문이 있었다. 기술이 감각을 확장할 수 있다면, 감정도 확장할 수 있는가?
AI는 감성적인 이미지와 음향을 만들고, 조명은 장면의 정서를 즉각적으로 구현한다. 관객은 그 안에서 감정을 느끼지만, 그것이 예술가의 감정이 건너간 것인지, 아니면 기술이 만든 감정의 패턴에 대한 반응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 질문 앞에서 떠오른 인물이 톨스토이다. 그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예술을 '감염(infection)'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예술가가 실제로 체험한 감정이 수용자에게 그대로 옮겨가는 일, 다시 말해 감정이 건너가는 사건이 예술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는 감염을 단순한 비유로 보지 않았다. "감염이 없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단정하며, 감염력의 강도를 예술의 유일한 가치 기준으로까지 봤다.
톨스토이는 감정의 독특성, 표현의 명료성, 그리고 예술가의 진실한 체험을 감염의 조건으로 제시했고, 특히 마지막을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 했다. 예술가가 강렬하게 경험한 감정일수록 관객은 그 감정을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받아들이며 예술가와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기술과 AI가 만들어내는 감정은 다른 층위에 있다. AI는 기쁨이나 상실, 무대의 떨림 같은 실제 감정을 경험한 적이 없다. 따라서 AI가 생성하는 음악과 이미지는 정교한 조합일 수는 있어도 '감정의 원본'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기술이 만든 감정은 감염이 아니라, 감정처럼 보이는 패턴의 '모사'(imitation)에 가깝다.
그러나 기술을 사용하는 예술이 모두 감염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체험을 영상·이미지·사운드로 확장해 표현하는 미디어아트는 오히려 감염을 넓히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매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움직이는 주체가 실제 감정을 지닌 인간인가이다. AI가 겉보기만 감정처럼 만든다면, 기술을 쓰는 예술가와 감정을 흉내 내는 기술은 같다고 볼 수 없다.
무대는 앞으로 더 화려해지고 기술은 더 정교해질 것이다. 그러나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예술가의 내면에서 시작된다. 그 작은 떨림이 객석의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순간, 예술은 살아난다.
기술은 장면을 만들 수 있지만, 감정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감정은 여전히 인간의 경험에서만 시작되고, 인간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그래서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술이 아무리 앞서가도 관객을 움직이는 마지막 한 걸음은 인간의 몫이다. 연주자의 한 호흡, 작가의 한 문장, 예술가의 한 생이 만든 진동. 그 작은 진동이 누군가의 마음에 도달하는 그 순간, 예술은 기술을 넘어선다.
기술이 확장한 무대 위에서도 감정을 건너가게 하는 힘은 결국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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