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임재환] 테이저건을 달라는 발달장애인 아버지의 절규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사회부 기자

임재환 사회부 기자
임재환 사회부 기자

"제가 취재에 응한 건 테이저건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달간 발달장애 가정을 취재하면서 한 아버지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다. 하루에 열댓 번씩 돌발행동을 하는 딸을 진정시키려면 테이저건이라도 쏴야 한다는 짙은 호소였다. 내용이 극단적이라 기사엔 못 담았지만, 자녀를 눈으로 보고서야 그 말이 돌봄에 지친 아버지의 절규였음을 알 수 있었다.

최중증 발달장애로 태어난 딸은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난폭하게 변했다. 100㎏가 훌쩍 넘는 몸무게로 왜소한 아버지를 쉽게 제압하곤 했다. 충동적으로 집 밖으로 뛰쳐나가 실종되는 일은 허다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며 고개를 숙이는 건 오롯이 아버지의 몫이었다.

지적과 자폐 스펙트럼을 포괄하는 발달장애는 발병 원인이 규명되지 않으면서 완치의 개념이 없다. 그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의 장애를 인지한 순간부터 돌봄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아동기에는 '괜찮아지겠지' 기대하며 치료실을 전전하지만, 개선되지 않는 현실에 매번 좌절한다. 칫솔질 같은 일상 과업을 익히는 데에도 수년이 걸리고 있다.

성인 발달장애인을 둔 가정은 아우성이 더욱 컸다. 46세 자폐 아들을 둔 70대 노모는 세상을 떠나면 홀로 남겨질 자식 생각에 취재진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자녀가 오래도록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가장 보편적 소망일 텐데, 발달장애 가정은 그와 정반대였다. 아들이 하루라도 먼저 눈을 감아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다는 그 비통함을 결코 잊지 못한다. 이 비극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대변한다.

하지만 정책과 제도는 발달장애 가정의 절박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발달장애인법은 복지 지원 및 서비스를 보호자가 직접 신청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녀에게 눈을 뗄 수 없는 현실에서 신청주의에 기반한 지원책들은 서류로만 존재할 뿐, 가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설령 어렵사리 지원을 받아도 실효성은 크게 떨어진다. 지원 자격을 소득과 나이로 제한하면서 끊임없이 사각지대를 낳고 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바우처 금액은 자부담을 요구하면서 경제적 궁핍을 부추긴다.

지원 체계가 가동되지 않는 가운데 더 큰 문제는 발달장애인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25만5천150명이던 발달장애인은 지난해 28만672명으로 약 10%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장애인 수가 1만여 명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발달장애인의 증가세가 유독 두드러진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발달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발달장애 관련 지표가 악화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반가운 신호였다. 최근에는 관련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도 처음 가동됐다.

다만 정책이 선언에 머물지 않으려면 테이블 논의보다 현장에서의 탄탄한 사례 관리가 우선돼야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해법이 있다. 미국은 학교에서 장애아교육법에 의한 개별화 교육계획부터 졸업 이후 재활법에 의한 고용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발달장애인에게 전담 코디네이터를 배정하면서 관련 서비스도 연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원을 찾으러 다니는 구조에서 지원이 먼저 찾아가는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신청주의에서 발굴·연계주의로의 전환은 물론, 국가책임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듭나야 한다.

발달장애 가정은 오늘도 홀로 돌봄 전쟁을 치르면서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테이저건이 필요하다는 아버지의 한마디는 사회를 향한 마지막 구조 신호였을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국가가 이 신호에 응답해 주길 바란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