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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김지효] 이름 없는 유골들의 멀고 먼 귀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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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김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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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김지효 기자

누군가에게 고향은 반백 년이 걸려도 갈 수 없는 곳이 되기도 한다. 80년이 넘도록 타국 해저에 묻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1942년 2월 3일, 한날한시에 목숨을 잃은 이들은 모두 183명.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의 조세이(장생)탄광이 무너지며 희생된 노동자들은 계절이 수백 번 바뀌는 동안에도 여전히 차가운 바닷 속에 머물러 있다.

그날 희생된 183명 중 조선인은 136명이었다. 이 중 75명은 대구경북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업 환경이 워낙 열악해 일본인들마저 기피하던 조세이 탄광에는 인근 광산보다 유난히 강제 동원된 조선인 비율이 높았다.

탄광 회사는 태평양전쟁을 이유로 일본 정부의 석탄 증산 요구를 맞추기 위해 안전 기준을 무시한 채 채굴을 강행했고, 갱도 입구와 숙소에 감시원을 배치해 노동자들의 탈출을 봉쇄했다.

기준치보다 얕게 파고 들어간 갱도에서는 어선 엔진 소리도 들릴 정도였고, 내부를 지탱할 석탄 기둥마저 제거돼 언제 사고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끝내 갱도가 무너지자, 회사와 일제는 갱구를 콘크리트로 막고 노동자들을 구조했다는 허위 보도를 내며 사고를 은폐하고 축소하기에 이르렀다. 유족들은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조차 받지 못한 채 머물던 곳에서 내쫓겼으며, 사랑하는 가족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이 비극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간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회(새기는 회)'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성금을 모아 사고 조사와 갱구 발굴을 사실상 전담해 왔다. 이들의 노력으로 지난 2024년 9월 마침내 갱도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고, 본격적인 유해 수색 작업이 시작됐다.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해 8월 일부 유해가 확인되면서, 바닷속에 멈춰 있던 시간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올해 1월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조세이탄광 희생자 유골에 대한 DNA 감정이 합의됐다. 이후 일본의 유골 담당 부처인 후생노동성 관계자들이 현장을 찾았고, 일본 경찰이 한국 유족들에게 경찰서에 안치된 유골을 직접 공개하는 등 의미 있는 변화도 뒤따랐다.

이달 6일 현지에서 수중 조사가 시작된 지 3시간 만에 두개골이 발견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다음 날, 현장에 전해진 안타까운 비보와 함께 조사는 전면 중단됐다. 대만 국적 잠수사가 수색 도중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한 탄광 희생자 유족은 84주기 추도식이 진행되던 현장에 사고 전화가 걸려 오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며, 좋은 뜻으로 유해 발굴에 함께해 준 분이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겁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더는 민간의 자발적인 희생에만 진상 규명과 유해 발굴을 맡겨서는 안 된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채 80년 넘도록 고향 땅을 밟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국가 차원의 전담 기구를 설치하고, 안정적인 재정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장생탄광 진상 규명 및 희생자 유해 발굴을 골자로 한 특별법 2건이 발의돼 있는 만큼, 조속한 법제화를 통해 사업의 연속성과 집행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대구경북은 일제 강제 동원, 10월 항쟁, 코발트 광산 등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상흔이 중첩된 지역이다. 이름 없이 묻힌 이들 앞에서, 우리는 왜 이들이 목숨을 잃게 됐는지,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며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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