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가 만일 「한중록(閑中錄)」을 쓰지 않았다면 사도세자의 비극은 생생하게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 영조의 며느리인 '혜경궁 홍씨'의 존재는 이 회고록 같은 수필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드러났다.
'혜경궁'이 다시 회자(膾炙)된 것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08_hkkim(정의를 위하여)'라는 트위터 계정에 고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조롱성 비방 글이 대거 등장해 논란을 야기하면서다. "노무현시체 뺏기지 않으려는 눈물...가상합니다!" "문(재인)후보 대통령되면 꼬옥 노무현처럼 될거니까 그꼴 꼭 보자구요. 대통령병걸린 넘 보단 나으니까" "니 가족이 꼭 제2의 세월호타서 유족되길 학수고대할께~~^^" 등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이 계정에 게재된 글들은 진영을 넘어 대중의 공분을 일으켰다.
이 계정의 주인이 'hkkim'이란 영문 이니셜로 이재명 대통령의 부인 김혜경 여사로 지목되면서 김 여사는 '혜경궁 김씨'라는 별칭을 얻었다. 2017년 경기지사 예비후보로 나선 '친문' 전해철 전 의원 등은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이 계정에 대한 공동 조사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2018년 4월 선관위에 고발하면서 혜경궁 김씨 사건은 사법 문제로 비화됐다. '@정의를 위하여'는 2013년부터 이 대통령과 수시로 소통한, 밀접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혜경궁 김씨는 김 여사일 것이라는 추측이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이 사건은 경찰이 김 여사를 계정 주인으로 특정,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휴대전화 확보에 실패, 물증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리며 일단락된 바 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어준의) 딴지일보가 민심을 보는 척도라고 하는 등 딴지일보 게시판이나 SNS에 글을 많이 올리는 SNS 중독 정치인이다. 그는 당 대표 재선을 통해 당 지도력을 확고하게 한 뒤 이 대통령의 뒤를 이어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일치된 시각이다. 제동이 걸린 '1인 1표제' 당헌·당규 개정안 추진을 둘러싼 당내 논란의 본질이 명·청 갈등이라는 것을 정치권에서는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약화되거나 내년 선거에서 여당에 불리한 결과가 나온다면 '혜경궁 김씨' 같은 사건이 재연될지도 모른다.
'혜경궁 김씨' 트위터 글이 논란이 된 것은 작성자의 신원이 문제이거나 사법적 처벌 문제가 아니라 지켜야 할 정치적 금도(禁度)를 넘어선 표현 때문이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혜경궁 김씨'가 이 대통령과 가까운 지인이었다면 정치적 패륜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국민의힘 '당원게시판 사건'도 '혜경궁 김씨' 사건과 판박이다. 사건 당사자가 한동훈 전 대표의 가족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공개 게시판이나 SNS에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졌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도 처벌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한두 건이 아니라 수십, 수백여 건에 이르는 비방 글이 한 전 대표 가족에 의해 작성·게시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표현의 자유와 별개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것이 맞다. 한 전 대표가 그땐 몰랐고 사후 인지했더라도 시시비비를 밝히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혜경궁 김씨'와 같은 악플러는 오늘도 '표현의 자유' 뒤에 숨어서 암약(暗躍)하고 있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diderot@naver.com 슈퍼차이나연구소대표)





























댓글 많은 뉴스
"군사분계선 애매하면 더 남쪽으로"…DMZ 내 北 영역 넓어지나
박지원 "북한 노동신문 구독은 가장 효과적인 반공교육"
[서명수 칼럼] 소통과 호통, 한없이 가벼운 대통령의 언행
5년 만에 8천만원 오른 대구 아파트 가격…'비상 걸린' 실수요자
'제1야당 대표 필리버스터 최초' 장동혁 "나라 건 도박 멈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