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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욱의 대구문화 오디세이] ⑭ 도심 명물골목에서 피어난 기억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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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심의 명물거리들. 중구청 제공
대구 도심의 명물거리들. 중구청 제공

골목은 단순히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가 아닌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이다. 또한 도시의 성장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시의 얼굴은 골목에서 드러난다고 한다. 대구 도심에는 전통과 추억이 담긴 수많은 골목이 얽히고설켜 있다. 이들 골목은 단순히 길과 통로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문화를 만들어낸 생태계의 뿌리이자 사람들의 삶이 켜켜이 쌓인 생활사다. 도시가 커지고 개발이 이어질수록, 그 사이로 남은 오래된 골목은 대구의 진짜 기억을 품고 있는 장소가 된다. 오래된 골목은 흔히 낡음과 쇠퇴의 상징으로 오해받지만, 실은 골목 자체가 하나의 전시공간이자, 사람의 삶이 전시의 주체가 되는 가장 인간적인 거리다. 북성로의 철공소, 진골목의 한옥, 약전골목의 한약방, 봉산문화거리의 갤러리들이 각각의 전시품이 된다. 대구가 '지붕 없는 박물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구의 도시적 DNA, 골목의 도시

대구는 대한민국 어느 도시보다 골목이 많은 곳이다. 중구만 해도 천여 개가 넘는 골목길이 있으며, 각기 다른 이름과 사연을 지니고 있다. 이 길들은 도시가 형성될 때 함께 태어나 근대 산업과 문화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품어왔다. 조선 시대 경상감영이 자리하며 정치와 상업의 중심이 되었던 대구는 자연스레 시장과 장터가 발달했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서양문물과 근대산업이 이 길들을 따라 들어왔다. 그 길의 끝마다 생긴 골목은 시간이 흘러 오늘날 '명물골목', '특화거리'로 남았다. 골목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기능할 뿐 아니라 사회적 기억의 장으로서도 역할을 한다.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 문화와 산업이 맞닿는 접점이기도 하다. 대구의 골목이 '살아있는 거리'로 불리는 이유는, 그 안에서 산업과 예술, 삶과 공동체가 동시에 호흡하기 때문이다. 봉산문화거리에서 북성로 공구골목까지, 남산인쇄골목에서 향촌수제화골목, 그리고 진골목과 약령시로 이어지는 시간의 흔적들은 하나의 도시 서사로 엮여 있다.

대구 중구 약령시 모습. 중구청 제공
대구 중구 약령시 모습. 중구청 제공

◆전통의 뿌리를 지킨 골목들

대구의 도심을 걷다 보면, 시대마다 다른 산업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중에서도 남성로 약전골목은 대구의 상징이자 가장 오래된 명물거리다. 350년 넘게 이어진 약령시는 조선 중기부터 약재를 거래하던 한약재 시장으로, 중국 상인들까지 찾아오던 국제적 무역 공간이었다. 지금도 이곳은 한약방과 한의원이 밀집해 있고, 매년 5월이면 '대구약령시한방문화축제'가 열려 대구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행사가 된다. 한방특구로 지정된 이 거리는 단순한 상업지가 아니라, 향기로운 약초의 거리이자 건강과 전통의 문화를 잇는 공간이다.

북성로 공구골목은 대구 산업화의 상징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물자를 거래하면서 형성된 이곳은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는 말이 돌 만큼 기술자들의 손끝에서 산업이 태어난 거리였다. 공구 판매상과 기계제작소, 철공소들이 밀집된 이 골목은 도시의 기계장이자 장인정신의 현장이었다. 또 '북성로 재발견 프로젝트' 등이 추진되면서 낡은 창고와 공구상 사이에 갤러리와 카페가 들어서고, 오래된 철물점이 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등 새로운 도시재생의 모범사례로 주목받았다.

남산동 인쇄전시관. 중구청 제공
남산동 인쇄전시관. 중구청 제공

이와 함께 남산동 인쇄골목은 대구의 출판역사를 증언한다. 서울에 이어 전국 2위 규모를 자랑하던 대구 인쇄산업의 중심지로, 책과 신문의 발전사, 인쇄인들의 기술이 이 좁은 골목에 응축되어 있다. '남산인쇄전시관'이 조성되면서 산업유산의 보존과 함께 문화자원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신동 양말골목과 미싱골목 역시 산업화 시대 여성들의 노동과 삶을 담고 있다. 양말골목은 대구 섬유산업의 전성기와 함께 성장했고, 미싱골목은 재봉틀의 소리로 가득한 골목이었다. 이곳은 결혼 혼수품으로 재봉틀을 들이던 시절의 정서가 남아 있고, 지금도 옷을 수선하거나 한복을 짓는 장인들이 이곳에서 맥을 잇는다. 한 세기의 생활문화가 삯바느질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도심 깊숙이 들어서면 대구의 근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진골목이 있다. '질다'는 경상도 사투리에서 유래한 이름처럼 길고 깊은 이 골목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대구의 대표 골목이다. 지금도 미도다방, 정소아과의원 같은 근대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시간의 층위를 보여준다.

인근의 화교거리 역시 1900년대 초 화교들이 정착하며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들은 계산성당과 제일교회 등의 건축에 기여했고, 현재도 대구화교협회와 화교소학교가 이 거리에 남아 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매년 열린 '대구화교중화문화축제'는 대구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사다.

봉산문화거리는 1980년대 중반부터 화랑과 표구사, 골동품점이 모여 형성된 예술인의 거리로, '대구의 인사동'으로 불린다. 매년 열리는 '봉산미술제'는 30년 넘게 이어지면서 대구 예술의 맥을 상징한다.

진골목 내 미도다방. 중구청 제공
진골목 내 미도다방. 중구청 제공

염매시장 떡전골목과 동인동 찜갈비골목은 대구의 미각과 정서를 대표한다. 실향민의 삶에서 비롯된 염매시장은 지금도 폐백떡과 행사떡을 사러 시민들이 찾고, 1970년대부터 형성된 동인찜갈비골목은 대구의 매운맛을 대표하는 음식골목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교동귀금속거리 또한 귀금속 제조·도매·판매가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전국 유일의 주얼리특구로, '대구패션주얼리위크'가 매년 열려 도시산업과 문화의 접점을 이룬다.

대구는 골목경제의 도시다. 자동차부속골목, 인쇄골목, 주얼리골목, 공구골목, 수제화골목 등 산업과 상권이 골목 단위로 특화되어 있다. 이러한 골목경제는 대규모 산업단지나 첨단기업 중심의 성장과는 다른 경로로 도시를 살린다. 골목은 소상공인과 기술자의 연대, 생활의 현장이자 자생적 경제의 터전이다. 작지만 강한 산업생태계가 형성되는 곳이며, 문화적 도시재생의 핵심 단위로 평가받는다. 대구의 미래 경쟁력은 바로 이 장인정신과 골목문화의 결합에서 나온다.

교동 귀금속거리. 중구청 제공
교동 귀금속거리. 중구청 제공

◆기억의 장소에서 미래의 자원으로

오늘날 도시재생은 단순한 재개발이 아니라 기억의 재조립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된 골목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와 산업이 자라나는 토양이다. 대구의 골목들은 경제, 예술, 기술, 생활이 공존하는 복합적 문화자산으로 평가받는다. 교동의 금빛 주얼리, 북성로의 쇳소리, 진골목의 한옥 그림자 등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도시 서사를 이룬다. 이 골목들의 이야기를 잇는 것은 곧 대구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다.

향촌동 수제화거리. 중구청 제공
향촌동 수제화거리. 중구청 제공

대구의 골목은 단순한 옛길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만든 역사다. 약령시의 한약 향기, 남산동의 잉크 냄새, 봉산문화거리의 물감 냄새가 뒤섞인 거리는 대구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상징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도, 이 오래된 골목들이 존재하기에 대구는 인간적인 도시로 남아 있다. 골목은 사라지는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생명체다. 그 길 위에 시민의 삶과 기억, 예술과 기술이 함께 숨 쉬며, 낡음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낸다. 그 길을 따라 걷는 일은 곧 대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걷는 일이다.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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