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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보 기자의 '그 사람']'벨벳 외길 65년' 류병선 회장 "내 뭐 잘못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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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사후 24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와 "여보! 미안해"
초동안 86세, 세월 멈췄나? K-벨벳 선봉장 '세계 1위'
IMF 때 부도 위기, 2006년 LCD 러빙포 생산 '탄탄대로'

대구 중구 삼덕동 영도다움에서 류병선 영도벨벳 회장이 벨벳으로 제작된 제품들을 만지며 소재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영도다움은 벽지·커튼·의자 등 공간 대부분이 벨벳으로 구성된 전시장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 중구 삼덕동 영도다움에서 류병선 영도벨벳 회장이 벨벳으로 제작된 제품들을 만지며 소재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영도다움은 벽지·커튼·의자 등 공간 대부분이 벨벳으로 구성된 전시장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내 뭐 잘못 했어요?"

벨벳 하나로 세계 일류 섬유기업을 일궈, 금탑산업훈장(2019)을 받는 등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영도벨벳 류병선(86) 회장이 평생 가슴에 담아두고 있는 말이다. 이 말을 자주 한 대상은 다름아닌 남편 고(故) 이원화 창업주다. 24년 전 폐암으로 사망한 남편에게 늘상 하던 말로 매사 '난 잘못한 거 없다'는 식으로 맞대응을 했다.

류 회장은 "함께 고생했던 남편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미안하고, 후회되고, 가슴 아프다"고 지난 날을 회고했다. 하지만 이 미안한 마음은 영도벨벳 기업 발전과 가정 화합의 큰 원동력이 됐다. 단 한순간도 옆길로 새지 않고, 24년 동안 오로지 생산적인 일에만 매진해 큰 업적을 이뤄냈다.

◆"세계 시장 1위, 국내 최대 벨벳 기업"

류 회장은 1960년 남편과 함께 벨벳 업종으로 창업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의 국내 최대 벨벳 기업을 일궈냈다. 일본산이나 독일산 '비로도'가 밀수되던 시절에 8개월 동안 피나는 노력 끝에 1968년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후 빛나는 성공신화를 써냈다. 1975년 수출을 시작하고, 1988년 1천만 달러 수출 성과를 이뤄내고, 1990년에는 물 세탁이 가능한 마이크로 벨벳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환율 폭등으로 부도 위기를 맞기도 했다.

류 회장은 남편에게 '부도 낸 사업가로 남지 말라'며 용기를 북돋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집도 공장도 다 팔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2000년대 초 100억원 이상의 연구비를 들여, 2006년 국산 LCD 러빙포 생산에 성공했다. 이후 영도벨벳은 전 세계 시장에서도 탄탄대로를 걷고 있으며, 2019년에는 금탑산업훈장까지 수상했다.

◆"65년 동안 한 우물"

영도벨벳은 구미에 섬유공장, 대구에 제품공장, 영도다움 전시관, 군위에 연수원 4박자를 다 갖추고 있다. 명실상부 TK 향토 기업이다. 벌써 창립 65주년이나 됐다. 영도다움 1층 전시관 한쪽 벽면을 도배할 정도로 영도벨벳이 지금까지 걸어온 영광의 표창들이 걸려있다.

역대 대통령들(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의 표창부터 시작해 금탑-은탑-동탑 산업훈장 그리고 납세 모범기업 등 대한민국에서 받을 수 있는 상들은 몽땅 다 구경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류 회장은 "뿌듯하죠? 벨벳 하나로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이 놀랍다"며 "1973년 연사부터 시작해 이제는 완제품까지 일괄 생산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류병선 영도벨벳 회장이 대구 중구 삼덕동
류병선 영도벨벳 회장이 대구 중구 삼덕동 '영도다움'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비롯한 국민훈장 석류장, 신지식인 인증 등 각종 특허 상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60여 년간 벨벳 한 품목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해온 영도벨벳의 발자취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여보! 내가 잘 했죠?"

남편은 하늘나라에서 아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세계 일류 수출기업으로 영도벨벳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데다, 2남2녀 자녀들이 출가해 여섯 손주까지 15명 대가족이 화목하고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 사후 24년 동안 열심히 살아온 류 회장의 빛나는 성적표다.

류 회장과의 개인적 인연이 만 15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터라, 짖궂은 질문도 마구잡이로 던졌다. "재혼 생각 안 해봤어요?", "사랑한다고 매달리던 남자는 없던가요?". 류 회장은 잠시 울먹하더니 "지금 무슨 소리 하고 있는교?"라며 손사래를 쳤다. 24년 동안 말 못할 외로움과 아픔이 담겨 있는 문답이었다.

◆"87세 동안, 세월 멈췄나?"

믿기지 않는 동안(童顔)으로 치자면, 류 회장은 이길여(94) 가천대 총장에게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쭈글쭈글한 할매 피부를 생각했다가 실물을 보고나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남편 별세 이후 24년 동안은 아예 늙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마저 스친다.

류 회장의 활동력은 '영원한 청춘'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1년 365일 스케줄이 빡빡한데도, 어디 하나 펑크내는 법이 없다. 이달 중순에도 대구 중구체육회와 함께 중국 7대 경제특구 중 한 곳인 푸젠성 샤먼 쪽에 3박4일 동안 교류 일정을 포함해 골프 라운딩까지 하고 왔다.

류 회장은 초동안의 비결에 대해 묻자 "화장품(자사 제품 연비아)을 좋은 거 써서 그런가(ㅎㅎㅎ)?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좋은 일을 많이 하다보니 그렇습니다"라고 겸연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국내 최대 벨벳 기업 영도벨벳을 창업한 류병선 회장이 대구 도심 골목에 자리한 전시장
국내 최대 벨벳 기업 영도벨벳을 창업한 류병선 회장이 대구 도심 골목에 자리한 전시장 '영도다움' 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류 회장은 "세계가 대구를 찾아오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불교 대모(大母) "내공은 보살 수준"

류 회장과 불교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연관 검색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신도회장을 비롯해 대구경북불교총연합회장과 더불어 대한민국 전체 신도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머리에는 지혜, 얼굴에는 미소, 가슴에는 사랑"

그는 이 말을 들려주고, 삶 속에서 실천한다. 이런 마음가짐 역시 초동안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 100이라는 수치의 스트레스를 주면, 거의 10 이하로 줄여버리는 마음 다스림의 소유자다. "남을 왜 미워하고 원망합니까? 그런 에너지를 쓸 바에야 차라리 다른 생산적 일을 찾아야죠? 그 에너지가 아깝습니다."

류병선 영도벨벳 회장이 대구 중구 삼덕동 영도다움에서 한국의 전통 문화를 소재로 만든 벨벳 베개를 선보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류병선 영도벨벳 회장이 대구 중구 삼덕동 영도다움에서 한국의 전통 문화를 소재로 만든 벨벳 베개를 선보이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영도벨벳 'K-스튜디오', '패션쇼'

영도다움 전시관 3층에는 벨벳 'K-스튜디오'가 있다. 국내 지상파 또는 전문 제작 외주사들이 만든 유명한 드라마나 사극에 벨벳 소재 옷이나 소품들이 적극 활용됐다. 사극 '왕과 나', '군주', '사임당' 등을 비롯해 인기 드라마 '도깨비', '대물', '신의' 등 60여 편에 '영도벨벳 협찬'에 이름을 올렸다.

영도벨벳 패션쇼도 자랑거리다. 2012년부터 매년 지역 관계, 재계, 금융계, 언론계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문화행사다.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하고 있으며, 벨벳으로 연출할 수 있는 이채로운 패션들을 감상할 수 있다. 기자 역시 이 패션쇼에 세 차례나 런웨이를 하기도 했다.

※용어설명

*러빙포(Rubbing Cloth)=액정분자를 일정한 방향으로 배열시킬 목적으로 기판 위에 코팅된 배향막을 물리적으로 마찰시켜 배향막 분자를 재정렬시키는 러빙 프로세스 공정에 사용되는 고부가가치 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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