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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이호준] 권위에 대한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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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논설위원
이호준 논설위원

예일대 교수였던 스탠리 밀그램은 1961년 '권위에 대한 복종' 관련 실험을 했다. '권위자의 지시 앞에서 개인의 도덕적 판단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피실험자를 모집해 교사와 학생으로 역할을 나눴고,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15V씩 30단계까지 높이도록 교사에게 지시했다. 학생과는 미리 입을 맞췄고 전기 충격도 가짜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피실험자의 65%가 최고 전압인 450V까지 충격을 가했다. 실험에 앞서 예상했던 비율은 450V 경우 고작 0.1%였다. 300V 이상 예상치도 3%에 불과했다. 교사가 전압 올리기를 거부할 때 흰 가운을 입은 감독관(실험자)이 한 것이라곤 "책임은 내가 집니다" "계속하십시오" "당신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등 최소한의 말뿐이었다. 300V 이상 충격을 가하면 '위험하다'는 표시도 있었다.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실험 중단을 간청하거나 죽은 듯 반응을 보이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65%는 멈추지 않고 치명적(致命的)일 수 있는 최대치까지 전압을 높였다.

'윤리적 문제'로 큰 논란이 일었지만 이 실험은 권위가 책임을 떠안는 구조와 상황이 만들어지면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도 명령에 따라 비도덕적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전압을 끝까지 올리게 한 것은 감독관의 권위에 대한 복종이었다. 도덕적 판단과 책임은 권위자에게 돌리고 지시에 따른 것이다. 고통받는 학생보다 '실험 성공'이라는 상황과 권위를 더 중시한 결과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1심에서 징역 2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의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국무위원, 군·경 수뇌부 등 관련 선고와 재판도 줄줄이 이어진다. 윤석열 전 대통령 계엄, 권위에 대한 복종의 결과다. 사회 혼란과 분열, 민주주의 후퇴, 보수 궤멸(潰滅)도 초래했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위헌 논란에도 소속 의원들은 지도부를 따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통과시켰다. 법조계·시민사회단체 등의 삼권분립 훼손, 반(反)법치주의 우려와 지적에도 밀어붙였다. 2차 추가 특검, 정보통신망법, 언론중재법 개정 등 일방적인 입법이 폭주하지만 반대 목소리를 찾긴 힘들다. 법치와 국민보다 '당의 성공'이라는 상황과 지도부의 권위에 복종한 탓이다.

종교 집단의 정치 세력화, '태극기 부대', '윤 어게인', 특정 유튜버, '개딸' 등 극단적 또는 강성 지지층과 팬덤 정치도 같은 맥락(脈絡)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들 세력은 각 진영과 지지 정치인의 권위에 복종하는 피실험자가 될 수도, 그들을 조종하는 실험자가 될 수도 있다. 힘과 권위를 가지게 된 이들의 눈치를 보며 반응을 살피고 말과 지시에 따르는 정치인이 넘쳐난다. 특정 정치인 지지자 모임을 만들고, 민심 대신 지지자들의 비중을 높이는 당헌 개정을 추진하는 것도 그 힘과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다.

제왕적(帝王的) 정치, 극단의 정치, 강성 지지층·팬덤의 정치, 일방의 정치가 아닌 상식과 도덕에 기반한 정치를 위해선 실험에서 지시를 끝까지 거부했던 35%가 필요하다. "이것은 옳지 않다"며 권위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거부했던 그들처럼, 진영의 논리가 상식과 도덕을 넘어서려 할 때 전압 스위치에서 단호히 손을 뗄 수 있는 그 35%가 힘을 모을 때 왜곡된 한국 정치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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