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기획·제작한 책 <지상대구>는 옛 지도와 주요 시설 도면을 통해 대구가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도시가 됐는지를 따라간다. ▷교통과 인프라 ▷경제와 산업 현장 ▷문화와 휴식 공간 등 대구 발전의 궤적을 4부에 걸쳐 풀어낸다. 이 가운데 2부는 철도와 도로 같은 도시의 필수 시설이 어떻게 자리 잡아왔는지를 조명한다. (편집자 주)
아침에 눈을 뜬 뒤, 다시 잠에 들 때까지 우리는 얼마만큼의 물을 사용할까? 마시는 물뿐만 아니라 몸을 씻고, 요리를 하고, 옷을 세탁하는 모든 행위에 물이 소모된다. 환경부 조사 결과, 우리가 1일 사용하는 물의 양은 대략 287L에 달한다. 이 많은 물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아래에 촘촘하게 깔린 수도 시설을 통해 우리에게 흘러 들어온다.
갓 근대적 도시로 태어난 20세기 대구의 수도 시설은 어땠을까. 기존 수도시설로는 확장된 교외까지 물을 보급할 수 없을 정도로 도시가 확장되고 있었다. 대구부는 전수 조사에 나서며 1930년 '대구부수도전도'를 그렸다. 전도에는 가창수원지에서 수도산(대봉)배수지까지 수도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이 담겨있다. 이 계획을 토대로 확장 공사를 진행했고, 1933년부터 교외 지역까지도 수도가 보급됐다.
고질적인 홍수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팔거천과 금호강이 만나는 '하중도' 인근과 대구역 북쪽에 해당하는 현 침산교 인근은 매년 막대한 인명, 재산 피해에 시달렸다. 이에 따라 양쪽에 제방을 쌓고, 하천 곡선을 완만하게 해 침수를 방지하고자 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도시로 물을 공급하는 정수장도 처리 용량의 한계에 부딪혔다. 주요 수자원이던 가창 정수장이 하루 동안 처리할 수 있는 물은 5천톤이었다. 1인당 하루 수돗물 사용량인 287L로 계산했을 때, 수용 가능한 인구 수는 1만7천여 명에 불과한 셈이다. 깨끗한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증축 공사는 필수였다.
'근대적 형태' 상수도 사업의 첫 발인 댐이 등장할 때였다. 가창댐은 비슬산맥과 최정산 사이를 걸쳐 흘러 내려오는 용계천을 막아서 만들었으며, 가창 저수지라고도 불렸다. 공사를 능률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1955년 건설 사무소까지 설치됐다.
공사가 끝난 건 이듬해였다. 가창댐을 축조하면서 저수량은 200만톤, 정수량은 하루 2만톤으로 대폭 늘었다. 이조차 부족해, 추가 공사가 진행됐다. 1980년대 가창댐의 저수 용량을 910만톤으로 한차례 더 늘리고, 하루 동안 1만톤을 정수할 수 있는 냉천 신정수장까지 축조했다. 드디어 먼 교외뿐만 아니라 대구 중심지에도 깨끗한 물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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