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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산업재해 이후, 마음을 지키는 안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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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직업트라우마센터의 하루

담이 이뤄지는 장소는 정해져 있지 않다. 옥상이 되기도 하고, 공터에 의자를 놓고 마주 앉거나 컨테이너로 된 좁은 공간이 상담실이 되기도 한다. 산업재해 현장 상담 환경은 대체로 열악하다.
담이 이뤄지는 장소는 정해져 있지 않다. 옥상이 되기도 하고, 공터에 의자를 놓고 마주 앉거나 컨테이너로 된 좁은 공간이 상담실이 되기도 한다. 산업재해 현장 상담 환경은 대체로 열악하다.

끼임, 추락, 화재, 폭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관심은 대개 재해자에게 쏠린다. 그러나 사고를 둘러싼 사람들은 훨씬 많다. 최초 발견자, 사고 직전 현장을 목격한 동료, 응급처치를 시도한 노동자, 사고 처리를 담당한 관리자, 사적으로 가까웠던 동료와 지인들까지.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삶에도 깊은 흔적을 남긴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이 괜찮을 거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남겨진 삶이 어떤 이들에게는 죽음에 가까울 만큼 힘겨운 시간이 되기도 한다" 대구 직업트라우마센터 류연이(36) 상담사의 말이다. 그는 사고 이후 말없이 버텨야 했던 시간 곁에 서서, 이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돕는 마지막 안전망이 되어준다.

◆ 사고 일어나면 현장 출동

대구 직업트라우마센터에 상담실이 마련돼 있지만, 산업재해 관련 상담은 대부분 사고 현장에서 이뤄진다. 그렇기에 류 씨의 일터는 역시 현장이다. 상담 장소는 옥상이 되기도 하고, 공터에 의자를 놓고 마주 앉는 자리이거나 컨테이너로 된 좁은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산업재해 상담 환경은 대체로 열악하다. 그럼에도 상담사들은 이를 개의치 않는다. 산업재해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을 돕는 일 앞에서 장소는 부차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담은 단기간에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길게는 1년 가까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동안 상담사들은 현장을 오가며 지속적인 개입을 이어간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류 씨는 "센터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를 떠올리면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라고 말했다.

대구직업트라우마센터는 2018년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당시에는 전국에 단 한 곳뿐이어서 서울과 인천, 강릉 등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전국 각지의 현장을 오가야 했다. 그러나 2026년 2월 기준 직업트라우마센터는 전국 24곳으로 늘었고, 권역도 한층 촘촘해졌다. 산업재해 이후 심리 개입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관련 제도가 점차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다.

대구직업트라우마센터 상담실에서 상담을 진행 중인 류연이 상담사. 류 씨는 산업재해 상담은 물론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고객의 폭언·폭행 등 다양한 사안을 동시에 맡고 있다.
대구직업트라우마센터 상담실에서 상담을 진행 중인 류연이 상담사. 류 씨는 산업재해 상담은 물론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고객의 폭언·폭행 등 다양한 사안을 동시에 맡고 있다.
대구직업트라우마센터 상담실에서 상담을 진행 중인 류연이 상담사. 류 씨는 산업재해 상담은 물론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고객의 폭언·폭행 등 다양한 사안을 동시에 맡고 있다.
대구직업트라우마센터 상담실에서 상담을 진행 중인 류연이 상담사. 류 씨는 산업재해 상담은 물론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고객의 폭언·폭행 등 다양한 사안을 동시에 맡고 있다.

◆ 신체·행동·정서적 고통 호소 어루만져

"사망한 노동자가 자신의 아들과 또래이거나,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던 경우도 있고, 자신이 소개해 입사한 회사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깊은 죄책감을 호소하는 사례도 있었다. 폭발 화재 사고 이후에는 집에서 가스불조차 켜지 못하게 된 노동자도 있다"

산업재해를 경험한 노동자들은 두통과 수면 불편감, 음주·흡연 증가와 같은 신체·행동적 변화를 겪는 경우가 많다. 사고 장면이나 고인과 관련된 기억이 불쑥 떠오르거나, 불안·분노·성마름·죄책감·우울감 등 다양한 정서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사고는 현장에서 끝나지만, 그 여파는 노동자의 일상 전반을 흔들어 놓는다.

류 씨는 그런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는 "사고를 계기로 노동자들은 동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때로는 삶과 세상에 대한 믿음 자체가 손상되는 경험을 한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 직업트라우마센터는 노동자들이 다시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하고, 자신을 돌보며 일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두고 류 씨는 직업트라우마센터를 하나의 '닻'에 비유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서적 닻'처럼, 산업재해로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이 다시 심리적 안전감과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붙잡아 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고는 현장에서 끝나지만, 회복은 그 이후의 시간에서 시작된다. 직업트라우마센터는 삶의 폭풍 속에서 흔들리는 노동자들이 다시 일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곁에 서 있다.

산업재해가 잦은 건설·제조 현장은 대부분 남성 중심 사업장이다. 심리상담에 대한 접근 자체가 쉽지 않고, 상담을 받는 것이 혹시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도 크다. 산업재해 트라우마 집체 상담을 받고 있는 근로자들.
산업재해가 잦은 건설·제조 현장은 대부분 남성 중심 사업장이다. 심리상담에 대한 접근 자체가 쉽지 않고, 상담을 받는 것이 혹시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도 크다. 산업재해 트라우마 집체 상담을 받고 있는 근로자들.

◆ 반드시 필요한 치료, 조금씩 바뀌는 제도

산업재해로 인한 트라우마는 대부분 '단일 트라우마'에 해당한다. 사고의 시작과 끝이 비교적 분명하고, 사고 이후 작업 환경 점검과 개선 조치가 이뤄지면서 실질적인 위협 요인이 감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전문적인 개입이 이뤄진다면 회복 가능성도 크다. 류 씨는 이러한 특성을 들어 "산업재해 트라우마는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산업재해가 잦은 건설·제조 현장은 대부분 남성 중심 사업장이다. 심리상담에 대한 접근 자체가 쉽지 않고, 상담을 받는 것이 혹시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도 크다. 소규모 사업장이나 1인 사업자일 경우 부담은 더 크다. 사고 조사에 직접 대응해야 하는 데다 생계를 위한 업무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대산업재해 이후 노동자 심리상담 개입을 안정화하기 위한 연계 구조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류 씨는 "그동안 각 지역 직업트라우마센터와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이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과 노동자에게 개입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사고 관련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워 사례 발굴에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올해부터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직업트라우마센터 담당 근로감독관'을 지정해 직업트라우마센터와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업무 프로세스를 마련했다. 상담 개입의 시기와 대상자를 놓치지 않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제도가 조금씩 보완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류 씨는 "반가운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는 한순간에 끝나지만, 회복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며 "산업재해 이후 심리 회복과 직업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사회적 관심이 더 커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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