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하원 시간에 맞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장을 보고, 집안일을 한다. 놀이터에서 땀을 흘리며 함께 뛰고, 병원 대기실에서 아이를 안고 달랜다.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고, 밤중 울음에도 깬다.
과거, 육아와 가사는 엄마의 몫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아빠의 역할에도 분명한 변화가 일고 있다.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를 돌보는 아빠, '돕는' 수준을 넘어 양육을 함께 책임지는 아빠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 아빠 육아, 낯설지 않은 풍경
2년 전 육아휴직을 사용한 소방공무원 김준영 씨(39)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아내가 산후 우울증이 크게 왔었다. 그래서 빨리 복직하고 싶어 하더라. 그래서 내가 육아휴직을 썼다" 주양육자가 아내였던터라 걱정도 컸다. 하지만 그는 "아이를 낳은 아내보다 체력적으로는 내가 더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 하나로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김 씨는 아이와 애착 형성을 하는 시기 아빠가 함께여서 좋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 씨는 "주변에 보면 '엄마 껌딱지' 아기들이 많다. 그래서 아빠들은 육아에서 해방됐다며 좋아하기도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며 "아이에게 아빠의 역할이 큰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리고 말했다.
실제로 아버지의 적극적인 양육 참여는 아이의 정서 안정, 사회성 발달, 자존감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아빠 육아'는 선택이 아니라 아이 성장에 필요한 요소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아빠들끼리 배우고 나누고
이 같은 변화는 민간 모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대구경북지회가 운영하는 '대구 100인의 아빠단'은 육아에 관심 있는 아빠들이 모여 고민을 나누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참여자 김지수 씨(39)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몰랐는데 많이 배울수 있어 좋다"며 "남자들의 특성상 이런 공동체 형성 및 소통이 어려운데 이러한 활동이 그런 부분을 없애줬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에게 자유시간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는 것 또한 기쁘다"고 덧붙였다.
산후조리원 동기 모임에서 시작해 남편들끼리 자발적 육아 모임을 꾸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아빠 육아'는 더 이상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각 시·군 가족센터에서도 '아빠 육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자녀와 소통하는 방법부터 몸으로 놀아주는 놀이법, 체험 행사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아빠 교육 전문 강사 김성재 씨는 "영유아 시기 아빠와의 놀이 경험은 아이의 자존감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며 "놀이 과정에서 스킨십과 따뜻한 언어가 아이에게 안정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인프라·정보 여전히 엄마 중심
그러나 현장에서 아빠들은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힌다. 대표적인 사례가 화장실이다.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다는 한재옥 씨(36) 씨는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마땅한 공간이 없어 대변기 칸에서 처리하거나 차로 이동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이나 마트, 키즈카페 등에는 수유실이나 가족 휴게실이 마련돼 있지만, 여성 이용자가 주를 이루는 공간에 들어가기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진행한 '내가 생각하는 요즘 아빠' 조사에서 '아빠 육아 시 가장 불편했던 점' 3위로 수유실 이용 문제가 꼽혔다. 응답자들은 '남자 화장실 내 기저귀 교환대 설치'와 '남성의 수유실 출입 제한'을 주요 불편 사항으로 지적했다.
정보 접근 역시 쉽지 않다. 지역 맘카페와 육아 오픈채팅방은 대부분 여성 중심으로 운영된다. 여성 인증을 요구하는 커뮤니티도 적지 않다. 남성 양육자는 정보 공유와 고민 나눔의 통로에서 배제되는 구조다. 육아용품 광고와 부모 교육 프로그램 역시 '엄마'를 전제로 기획되는 경우가 많다. 아빠는 여전히 '보조자'로 상정되는 셈이다.
◆ 개인 결단 못 따르는 제도 변화
제도는 열려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더디다. 국가데이터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대구지역 남성 육아휴직자는 2,245명으로 전년보다 350명(18.5%) 증가했다. 수치만 보면 증가세다. 그러나 비율로 보면 상황은 다르다.
지난해 대구의 남성 육아휴직률은 8.4%로 전국 17개 시·도 중 16위 수준이다. 전국 평균(10.2%)보다 1.8%p 낮고, 가장 높은 제주와는 6.6%p 차이가 난다.
휴직 이후 복귀 부담도 여전하다. 포항의 한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최모(37) 씨는 육아휴직 의사를 밝히자 "그럼 자네 일은 누가 하나"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휴직은 사용했지만, 회사에 '첫 남성 육아휴직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직 준비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았다. 법이 보장한 권리이지만, 현장에서는 '권리'보다 '민폐'라는 인식이 더 빠르게 퍼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아빠 육아 참여가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변화지만, 이를 뒷받침할 사회적 인프라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한다. 가정 안에서의 역할 인식은 달라졌지만, 직장 문화와 공공시설, 정보 구조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육아하는 아빠'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결단을 넘어 제도와 문화의 변화가 함께 뒤따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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