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쨍쨍내리는 여름날 오후.할머니는 우체부가 대문 앞에 던져두고 간 편지봉투 하나를 손에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할머니는 글을 읽지 못했지만 그 편지가 단박에 월남전에 참전한 작은 아들이 보낸 군사우편임을 직감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글을 배우지 못했다. 배움은 사치였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손녀는 채 가방도 내려놓기 전, 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끌려 마당 한구석 담벼락 아래 자리를 잡았다.
"할머니, 삼촌이 보낸 편지예요."
손녀는 봉투를 뜯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어머니, 저는 잘 있습니다…"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는 손녀의 목소리는 아직 앳되었지만, 단단함이 묻어 있었다. 할머니는 두 손으로 겉봉투를 보다가 손녀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날이 많이 덥습니다. 하지만 저는 건강합니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된장과 고추장이 큰 힘이 됩니다…"
할머니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 된장을 담그던 날, 혹여 상할까 염려하며 항아리 뚜껑을 몇 번이나 열어보았던 기억이 스쳤다. 전쟁이란 것이 총과 포성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도 장맛이 아들을 살리고 있다니, 그제야 숨이 조금 놓였다.손녀가 더듬더듬 읽어 내려가는 그 소리는 단순한 글자가이 아니었다. 그것은 포화가 빗발치는 정글 속에서도 살아남아 어머니 이름을 부르는 아들의 생생한 목소리였다.
손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읽었다.
"밤이 되면 고향 생각이 많이 납니다.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꼭 돌아가 효도하겠습니다."
그 대목에서 할머니의 눈물이 툭, 무릎 위로 떨어졌다. 효도라는 말이 이토록 먼 약속처럼 들린 적이 있었을까. 살아 돌아오는 것, 그것 하나면 족했다. 효도는 그 다음의 일이었다.
"할머니… 삼촌이 금방 온대요.".할머니는 손녀의 손을 꼭 잡았다. 거칠고 마른 손과 아직 살결이 보드라운 손이 포개졌다.
강해용 작 '대독(代讀)'에서 글자를 아는 손녀와, 오직 자식 걱정뿐인 어머니가 만나 비로소 아들의 '무사함'이라는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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