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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나의 두발 산책] 술잔 사이로 오간 권력의 역사… 종로의 '요정'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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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전통 요정 가미(加味) 전시관에서 윤금식 전 대표가 기생의 발생과 변천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1960년대 종로의 요정들은 정치인과 군인, 기업인들이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으로
대구의 전통 요정 가미(加味) 전시관에서 윤금식 전 대표가 기생의 발생과 변천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1960년대 종로의 요정들은 정치인과 군인, 기업인들이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으로 '밤의 정치'가 이곳에서 이뤄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지금의 종로를 떠올려보자.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가. 퇴근한 직장인들이 고깃집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거리. 동성로로 향하기 전 지나치는 음식점 골목 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경기가 좋지 않다지만, 종로는 여전히 밤에도 밝은 유흥 골목이다.

언제부터 종로가 밤이 없는 거리였을까. 이곳의 밤은 오래전부터 밝았고, 권력과 정치 밀담이 오가는 은밀하고 필수 불가결인 공간이었다.

◆ 요릿집과 기생의 등장

대구는 한강 이남의 '요정 도시'라 불릴 정도로 기생 문화가 꽃폈던 곳이다. 그 출발점은 1904년 대구역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철도가 놓이자 일본인 상인과 관리들이 종로 근처로 유입됐고, 이들을 상대로 한 고급 요릿집이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요릿집에서 손님을 접대하며 춤과 노래로 생계를 이은 게 기생이었다. 1909년 관기 제도가 폐지된 이후, 기생들은 생업을 이어가기 위해 스스로 기생조합을 만들고 요릿집을 드나들었다. 이때 기생을 교육하는 조합이 종로에 하나둘 자리 잡았다.

이후 기생조합이 해체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유흥 공간이 등장한다. 요릿집과 기생조합의 기능이 결합한 '요정'이다. 요정은 조합처럼 기생들에게 숙식과 월급을 제공했고, 춤과 노래 교육도 맡았다. 단순한 술집이 아니라 일종의 예능 양성소이자 사교 공간이었던 셈이다.

요정과 관련된 상가도 덩달아 부흥했다. 기생들의 옷과 장신구를 세탁하는 가게, 머리와 화장을 담당하던 미용실, 기생과 술 취한 이들의 발이 될 택시 회사까지. 도시 변두리에 사는 이들이 종로를 오가는 기생을 구경하러 왔다가, 자신도 모르게 지갑을 여는 일도 반복되면서 종로는 더욱 번창한다.

대구 종로에서 한때 요정으로 이름을 알렸던
대구 종로에서 한때 요정으로 이름을 알렸던 '삼천궁' 건물이 세월의 흐름 속에 '아리랑 민속모텔'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화려했던 요정 문화의 흔적은 사라지고,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듯 다른 용도의 건물로 변신한 모습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권력의 밤이 열리다

요정 문화가 가장 번성한 시기는 1960년대였다. 한국 정치사가 격동하던 때와 정확히 맞물린다.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은 공개된 장소보다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필요했고, 요정은 그 요구에 딱 맞는 장소였다.

당시 종로는 아무나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다.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 시장, 대기업 사장 정도는 돼야 이 거리에서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종로는 말 그대로 '날고 긴다' 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권력자들이 워낙 많이 드나들다 보니 위계도 뚜렷했다. 어떤 날에는 경북도지사조차 방이 없어 문간방에서 술을 마셔야 할 정도였다.

요정의 마담들은 손님 관리에도 능했다. 한 요정 마담은 지역 신문의 동정란을 빠짐없이 챙겨봤다고 한다. 누가 어디서 어떤 일을 했는지, 최근 어떤 자리에 참석했는지를 살피며 손님의 취향과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손님을 불러들였다. 그만큼 요정은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라 권력의 흐름을 읽는 공간이었다.

대구 종로 일대 요정 골목의 한적한 골목 풍경. 한때 심향각·불로정·묵향 등 여러 요정이 성업했던 이곳에는 이제 가미만 남아 옛 종로 요정 문화의 마지막 명맥을 지키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 종로 일대 요정 골목의 한적한 골목 풍경. 한때 심향각·불로정·묵향 등 여러 요정이 성업했던 이곳에는 이제 가미만 남아 옛 종로 요정 문화의 마지막 명맥을 지키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나라 뒤흔든 공작의 무대

대표적인 사례가 1961년 5·16 군사정변 시기다. 당시 대구에 머물고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거사 준비 과정에서 종로의 요정 '청수원'을 찾았다. 그 무렵 박정희는 제2군 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밀려나 대구에 머물고 있었다. 조용히 모의를 진행할 장소가 필요했고, 무엇보다 입이 무거운 곳이어야 했다.

청수원은 그런 조건에 맞는 곳이었다. 이곳은 손님들이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것 같으면 종업원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자연히 정치인이나 군인들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한 공간이었다.

박정희는 청수원 사장을 '누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김태남 사장이 타계하자, 박정희는 비서실 직원을 보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을 전달했다. 지금 청수원이 있던 자리에는 사장의 이름을 딴 태남빌딩에 세워져, 그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다.

사라지기전 춘앵각 입구 모습
사라지기전 춘앵각 입구 모습

◆ 으뜸은 춘앵각

수많은 요정 중에서도 단연 입방아에 자주 오른 곳은 춘앵각이었다. 옛 주인인 나순경 씨는 6.25 전쟁을 피해 대구로 내려왔다가, 요정을 차리며 정착했다. 애초 '청화지란'이라는 이름의 요정이었지만, 장사가 잘 되면서 가게를 확장하며 춘앵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순경 사장이 영업을 하며 받은 손님들은 누구나 알 만한 이들이었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시장과 도지사, 2군사령관이 들락거렸다. 재계에서도 인기인 곳이라, 태백공사 사장과 동국무역 회장도 춘앵각을 애용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종로에서 '잘 노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종로의 요정 춘앵각에서 휘파람으로 '베사메 무초'를 멋지게 불러 좌중의 호응을 얻었다는 후문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대령 때부터 춘앵각에 방문했다. 김수학 국세청장이 "대구의 춘앵각이 전국 요정 중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냈다"고 보고하자, 전두환은 "내가 대령 시절 그 집에서 술을 먹은 기억이 있다. 다만 지방의 요정이 어떻게 서울의 요정보다 더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냐"고 회상했다고 전해진다.

인기에 힘입어, 나순경 사장은 대구 요정업계의 대모 노릇을 했다. 춘앵각에서 근무하는 기생만 40여명, 그의 손으로 키워낸 기생은 수 백이었다. 그 기생들이 다시 종로 곳곳에 요정을 여는 식이었다. 그랜드 호텔 옆 한정식 '단추방'을 연 김명희, 대구 최초의 룸살롱 멕시코를 연 진소영 모두 나순경 사장의 손을 거쳤던 이들이었다.

워낙 종로를 찾는 고관대작들이 많다 보니, 오히려 춘앵각에서 조금 떨어진 '일심관'을 일부러 찾는 이들도 많았다. 자칫 요정에서 상관과 만나 어색해지는 상황을 벌이고 싶지 않아서다.

지금은 춘앵각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한옥 건물은 모두 헐려 유료 주차장이 됐다. 대구YMCA가 매입 후 건물을 보존해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려 했지만, 여성단체의 반발 등으로 무산됐다.

대구의 종로 요정
대구의 종로 요정 '가미' 전시관에는 일제시대부터 60년대, 70년대, 80년대까지 대구의 밤을 밝혔던 127개 요정의 미니어처가 전시되고 있다. 윤금식 전 대표는 " '밤의 정치'가 이곳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가장 마지막 요정, 가미

가미는 요정 중에서도 '후발주자'다. 하나둘 요정이 사라질 때인 80년대에 가게를 꾸렸다. 요정 문화에 음식을 먹고 풍류를 즐기는 기존 스타일에 당대 유행하던 '룸살롱' 스타일을 혼합한 방식이었다. 여종업원들은 전통 한복이 아닌 개량 한복을 입고 손님을 맞았다.

꿋꿋한 영업 뒤에는 사장 윤금식 씨의 고집이 있다. 그는 '요정'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승하는 데 공을 들였다. 단순 '접대부'가 아닌 우리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종합 예술인으로서의 '기생' 역사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뚝심' 따라 노래 하나도 허투루 연주하지 않았다. 전문 예술인들이 판소리 춘향가나 흥부전을 직접 연주했고, 낯선 전통음악을 한층 듣기 편하게 만들어주는 퓨전 민요도 흘러나왔다. 그 덕일까. 가미는 다른 요정들이 전부 사라질 때도 비교적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영업을 이어 나갔다.

가미가 흥한 80년대 이후 방문객들의 폭은 더 넓어졌다. 사업가나 재력가 2세, 소득이 높은 회사원들이 친교를 위해 즐겨 찾았다. 이후 이들이 요정이 아닌, 룸살롱·유흥주점을 찾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요정의 시대는 저물었다.

지금의 종로는 평범한 술집과 식당이 늘어선 거리다. 누구나 쉽게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고, 고민을 토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거리는 한때 권력자들이 모여들던 은밀한 무대였다. 종로 일대는 '밤의 국회'였던 셈이다. 기생들의 노래와 춤이 흐르던 요정 사이에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이야기들이 밤새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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