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 초가을. 경산시장 장터 한쪽 빈터에 임시 공연장이 세워졌다. 해가 기울 무렵 유랑극단이 온다는 소식에 마을주민들은 하나둘 모여들었고, 천막 안에서는 노랗고 붉은 전등 불빛이 흔들렸다.'유랑 극단'이 가져온 그 천막은 그시절 어른들에게는 고단한 삶을 잊게 해주는 마법의 공간이며, 동네 아이들에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철수를 비롯한 동네아이들도 해가 지기 전부터 공연장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동전 한 닢 나오지 않았다. 입장료는 철수에겐 너무 큰 돈이었다. 입구 앞까지 갔다가도 괜히 표 검사하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칠까 싶어 몇 번이나 돌아섰다.
공연이 시작되고 천막 안에서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악단의 아코디언소리가 울려 퍼지자 아이의 발걸음은 저절로 천막 뒤쪽으로 향했다.천막은 두꺼운 천이었지만 군데군데 느슨해진 틈이 있었다. 철수는 그 틈 하나를 찾아냈다. 두 손으로 천막을 살짝 벌리자 안쪽의 환한 불빛이 실처럼 새어 나왔다.철수의 눈이 그 틈 사이로 빼꼼히 들어갔다.
사회자가 "눈물없이는 볼 수없는 이수일과 심순애를 올리겠다!"고 말하자 객석에서는 "아이고…" 하는 탄식같은 소리가 나왔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관객들은 또다시 그 이야기를 보고 싶어했다.
무대에는 가난한 청년 이수일이 등장했다.
허름한 양복에 낡은 구두, 그러나 마음만은 순수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름다운 여인 심순애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가난은 사랑보다 더 큰 벽이었다.
이수일이 말한다.
"순애야… 지금은 내가 가난하지만
반드시 성공해서 너를 행복하게 해 줄게."
심순애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돈이 없어도 괜찮아요.
당신만 있으면 돼요."
그 장면에서 객석의 아주머니들은 눈물을 훌쩍이며 손수건을 꺼냈다.〈중략〉
공연이 끝나자 무대 위의 배우 한 사람이 객석 쪽을 힐끗 보더니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자, 지금부터는 어른들만 보는 시간이야!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순간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고 천막 뒤 틈새에서 그 소리를 들은 철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자기들을 보고 하는 말인가 싶어 몸을 움찔했다.배우겸 약장수는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을 돌며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으로 시작되는 현란한 언변으로 회충약이나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던 정체불명의 연고를 파는 시간이었다.
은상 김태연 작 '공짜 구경'에서 비록 "애들은 가라!"는 타박을 들으며 쫓겨나던 처지였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 악극단 천막은 결코 포기할 수 없던 '한 뼘의 극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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