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지난달 19일 오후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대강당에서 '2026년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오른손을 높이 든 54명의 목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베트남·중국·필리핀 등 13개국 출신의 외국인들은 이날 대한민국 국민으로 다시 태어났다.
◆ 드라마 한 편이 바꾼 인생
수여자 대표로 단상 앞에 선 모로코 출신 벤바라힘 하자르(30) 씨가 선서문을 한 줄씩 읽어 내려갔다. 유창한 한국어였다. 국적도 언어도 달랐던 13개국의 외국인들이 태극기 앞에 하나가 되었다.
"드라마 한 편이 인생을 바꾸고, 아이 하나가 귀화를 결심하게 했습니다" 하자르 씨가 처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드라마 한 편 때문이었다. 모로코에서 처음 방영된 '꽃보다 남자'를 보고 한국 문화에 빠져들어 한국어를 독학했고, 이후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2007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지 19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어는 능통해졌고, 지역 사회 봉사도 꾸준히 이어왔다. 귀화시험은 단 한 번 응시해 100점을 받았다. 그는 "오늘부터 대한민국 국민으로 자리잡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고향에서 오히려 '이방인'
우즈베키스탄 출신 코발축 마리아(44) 씨는 2006년 1월에 대구에 왔다. 고려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한국을 마음속 고향처럼 여겨왔다. 그는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꼭 한국에서 살고 싶었다"고 했다.
영주권자(F-5)로 한국에 살던 중 2011년 우즈베키스탄 고향을 찾았다가 뜻밖의 감정과 마주했다. 그는 "거기서 오히려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귀화를 결심했습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결심 뒤 그는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에 등록해 1년여 간 한국어 교육과 한국사회 이해 과정을 빠짐없이 이수했다. 그의 노력은 20년 만에 국적 증서로 돌아왔다.
대구에서 8년째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마리아 씨는 "곧 한국 이름도 만들고 '대한민국'이라고 쓰인 여권도 받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앞으로는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 "한국인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어요"
필리핀 출신 람반 라니(37) 씨가 귀화를 결심한 건 아이 때문이었다. 2015년 취업비자로 대구에 온 그는 한국인 남편과 가정을 꾸린 뒤 마음속에 한 가지 바람을 품었다. '이 아이에게 한국인 엄마가 되어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영천의 자동차부품 회사에 다니는 라니 씨는 "결혼할 때도 서류가 복잡했고, 늘 외국인 등록증을 꺼내야 하는 순간이 불편했다"며 "이제 당당하게 주민등록증을 내밀 수 있고, 이번 6·3 지방선거에도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을 찾을 계획인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님 영전에 귀화증서를 올리고 싶다고 했다.
코트디부아르 출신 다샤에벵 마리호세(40) 씨의 사연도 닮아 있다. 아프리카에 발전소 기술자로 파견된 한국인 남편을 현지에서 만나 2016년 청도에 정착한 그는 초등학생 딸을 키우며 10년 가까이 한국어와 씨름했다.
마리호세 씨는 "10년 만에 한국 사람이 됐다는 게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또 "2년 전 먼저 떠나신 부모님께 이 귀화증서를 보여드리지 못한 게 제일 아쉬워요"라며 그의 눈가가 잠시 붉어졌다.
◆ 베트남부터 모로코까지, 13개국이 품은 '대한민국'
이날 귀화자의 출신국은 베트남(27명)이 가장 많았고, 중국(8명), 필리핀·캄보디아(각 4명), 타이완(3명) 순이었다. 타이·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코트디부아르·몽골·모로코·네팔·미국이 각 1명씩으로 총 13개국이 한자리에 모였다. 언어도 문화도 달랐지만, 같은 국민이 됐다는 사실 앞에 모두가 하나였다.
국적증서 수여식은 2018년 12월 개정 국적법 시행 이후 매월 또는 격월로 열리고 있다. 귀화 허가를 받은 뒤에도 국민선서를 하고 증서를 받아야 비로소 대한민국 국적이 공식 취득된다. 법무부는 이 수여식을 통해 새 국민에게 소속감과 자긍심을 심어주고, 사회 통합의 출발점을 마련한다는 취지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2025년 한 해 전국 국적취득자는 총 1만 5,381명(귀화자 1만 1,344명·국적회복자 4,037명)으로 집계됐다. 전년(1만 4,615명)보다 5.2% 늘어 2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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