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독비행 날 아침, 교관 자리에 앉아 있던 건 사람이 아니라 60kg 쌀자루였다.매번 옆에서 호통을 치고, 내가 조종간을 거칠게 잡으면 눈빛으로 다그치던 그 자리에, 하얀 포대 하나가 사람처럼 묶여 있었다. 육군항공학교에서 조종사가 되려면, 학생 조종사가 혼자 헬기를 몰고 정해진 코스를 돌아오는 마지막 비행 평가를 통과해야 했다.
"오늘 쌀자루 교관님 잘 모셔라." 동기들의 농담 섞인 한마디에 겉으로는 같이 웃었지만, 조종 장갑 안 손바닥에서는 이미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제는 누구도 대신 잡아 줄 손이 없다. 혼자 활주로를 달려 이륙하고, 혼자 돌아와 무사히 착륙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때 단독비행은 말 그대로 운명을 가르는 비행이었다.통과하지 못하면 조종사 과정에서 탈락해 원 소속 부대로 돌아가야 했다. 한 번의 이륙과 착륙이, 앞으로 군 생활의 향방을 가르는 시험이었다. 활주로 끝에서 대기하는 동안, 무전기로 들려오는 교관의 목소리는 마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천천히 해라. 그동안 하던 대로만 해." 담담하지만, 짧은 문장 안에 걱정과 믿음이 함께 실려 있었다.
헬기 앞에 서면 제일 먼저 코끝을 찌르던 건 연료 타는 냄새였다. 뜨거운 엔진 열과 섞인 그 냄새는, 어릴 적 골목을 지나가던 모기 방역차를 떠올리게 했다. 흰 연기를 뿜으며 동네를 돌아다니던 그 차를 장난감처럼 쫓아가던 기억이 활주로 위에 겹쳐졌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활주로와 선글라스를 쓴 교관들, 멀리서 울리는 엔진 소리가 영화처럼 펼쳐졌다.
처음 헬기를 가까이서 본 건, 그보다 1년 전 연대본부 연병장이었다.점심을 마치고 나오는데, 저 멀리서 작은 점 하나가 각도를 잡고 곧게 내려오고 있었다. 500MD 한 대가 연병장 한가운데로 미끄러지듯 내려앉았다. 연대장이 아무렇지 않게 그 안으로 올라탔다. 그리고 헬기는 하늘로 떠올랐다. 마치 UFO가 사람 하나를 태우고 하늘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내 마음 한구석에 조종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조종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관제탑에 이륙 준비 보고를 했다. 'ready for take off.' 관제사로부터 이륙 허가가 떨어졌다. 콜렉티브를 들고 사이클릭을 당기자 기체가 천천히 떠올랐다. 그런데 예상보다 강한 옆바람이 기체를 밀어붙였다. 헬기가 순간 옆으로 기우뚱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 실수하면 끝이다.' 그때 무전기가 울렸다.
"괜찮다. 그대로 가라. 네가 연습하던 그대로만 해." 짧은 한마디였지만, 마치 누군가 뒤에서 등을 받쳐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깊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조종간을 바로 잡았다. 기체가 제자리로 돌아왔다.그 무렵 젊은 조종장교들 사이에는 묘한 전통 하나도 있었다.
단독비행 중에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피워 무는 일이었다. 떨리는 한 손으로 조종간을 잡고 다른 손으로 라이터를 켰다. 불꽃이 몇 번이나 꺼졌다. 겨우 담배 끝에 불이 붙었다. 허세 가득한 연기가 조종석 안에 퍼졌다. 그때 마음속에서 이런 말이 올라왔다. "나도 이제 진짜 조종사다." 그 한 모금의 연기는 두려움을 이겨 낸 우리들만의 작은 훈장이었다.
착륙을 마치고 엔진을 끄는 순간, 비로소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느껴졌다.헬기에서 내려오니 교관이 묵묵히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올리며 한마디 했다."이제 사람 태워도 되겠다." 그제야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던 긴장이 숨구멍을 찾은 듯 빠져나갔다. 생활관으로 돌아가자 동기들이 "쌀자루 교관 모시고 잘 다녀왔나?"라며 웃으며 등을 두드렸다. 그날 밤, 우리는 단독비행 중에 담배에 불을 붙여 봤는지, 교관 흉내를 제대로 냈는지, 낄낄거리며 떠들어 댔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나는 활주로 대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그래도 가끔 밤하늘에서 헬기 소리가 들리면 문득 그날이 떠오른다. 교관 대신 쌀자루를 옆에 태우고 손바닥에 땀을 쥔 채 활주로 끝에서 이륙 허가를 기다리던 그날.그날 나는 처음으로 혼자 하늘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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