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제주도에서 재배한 것으로 추정한다. 백제 문주왕 때 탐라국에서 귤을 특산물로 바쳤고, 고려 문종 때는 귤의 양을 늘려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의 세종실록에는 제주도의 감귤을 국가 관리 대상으로 하여 관청까지 두었고, 세조실록에 '감귤은 종묘에 제사 지내고 빈객을 접대함으로써 그 쓰임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제주의 한라산 주변 환경은 귤 재배에 매우 적합했다. 따뜻한 해양성 기후는 겨울에도 비교적 온화했고, 화산 토양은 배수가 잘되었다. 문제는 제주에서 수확한 귤을 한양까지 운반하는 일이었다. 귤이 상하지 않도록 짚과 나무 상자로 포장해서 배에 싣고, 말로 운반해야 하는 일련의 고된 행사였다.
이렇게 귀한 귤이기에 육지에 심고자 온돌까지 마련해보았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황감과(黃柑科)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감귤을 하사하고 치른 시험이었다. 학문을 권장하려는 방편이었으나 과거는 뒷전이고 귤 쟁탈전이 벌어졌다. 시험장을 발칵 뒤집어놓은 과일이 바로 귤이었다.
야사에 보면, 세종대왕이 후궁 신빈 김씨를 총애하여 직접 귤을 건네었다. 신빈 김씨는 세종의 왕비인 소헌왕후를 모시는 궁녀가 되었다가 세종의 눈에 띄어 후궁에 올랐다. 신빈은 성품이 근신하여 왕비 소생의 수양대군을 돌보았다. 그 인연으로 인해 훗날 계유정난 때 자식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회귤유친(懷橘遺親)', '육적회귤(陸績懷橘)'은 같은 어원을 가진다. 육적이 여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원술을 뵈러 갔다가 귤을 대접받았다. 육적은 귤 세 개를 품었는데, 떠날 때 인사하다가 품은 귤이 떨어져 들키고 말았다. "어머님이 귤을 좋아하시는지라, 돌아가서 맛보게 하려 그랬습니다." 어린 나이에 모친을 생각하는 효성이 갸륵하여 원술은 귤을 더 주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귤은 사랑의 과일이며 효도의 과일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귤은 옛날의 귤과는 다른 종이다. 임금에게 진상한 제주도 토종 '감귤(柑橘)'의 '감(柑)' 자는 '감자(柑子)나무'를 뜻하는 것으로 '홍귤'을 가리킨다. 삼국지의 조조가 탐했던 귤의 생산지는 온주 지방이다. 일본 사람들은 온주밀감(溫州蜜柑)을 개량해서 '꿀처럼 단 감귤'이라 했다. 이것이 일제강점기에 제주도에 도입되면서 '밀감'으로 불렸고, 오늘날 제주도 귤의 효시가 되었다. 그러나 정식 명칭은 '감귤'로 불러야 옳으며, 줄여서 '귤'이라 한다.
귤은 동양 의학과 약선(藥膳)에서 오래전부터 건강 식재료로 사용되어왔다. 귀한 과일인 만큼 과육뿐 아니라 껍질까지 약재로 활용되었다. 귤을 이용한 가장 대표적인 궁중 요리는 꿀이나 조청에 졸여 만든 정과였다. '진피는 오래될수록 귀하다'는 말이 있다. 잘 익은 귤피를 말린 것은 진피(陳皮), 덜 익은 파란 귤피는 청피(靑皮)라 한다.
귤은 맛이 시고 달며 성질은 平하다. 폐와 위에 도움을 주며 피부나 장기의 건조한 것을 촉촉하게 하고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귤껍질을 오래 묵힌 진피는 맛이 맵고 쓰며 성질은 따뜻하다. 비장과 폐에 도움을 주며 담(痰)을 삭여 가래, 기침 등의 호흡기 증상을 완화한다.
귤 철이 지났건만 한 상자가 배달되었다. 작은오빠가 주문해서 보내준 것인데, 농장에서는 끝물이라며 양해를 구하더란다. 10kg의 양으로 주스와 양갱을 만들며 귤 판을 벌인다. 피부가 노르끼리한 걸 보니 귤 속의 베타카로틴 색소가 몸을 점령했나 보다. 오빠 덕분에 귤 파티 제대로 한다.
서귀포의 밤입니다 / 여기저기 / 귤 나뭇가지에 / 보름달이 노랗게 알을 슬어 놓았습니다
거룩한 밤, 여기에도 있습니다-서정춘의 '달·귤·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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