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두 인물이 교차하며 두 정당의 상반된 처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3월 30일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선을 집중시킨 하마평을 현실로 구현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대구시장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것. 이 이슈는 광역시·도 인구수 7위로 추락한 대구를 부산·경기·인천보다 주목 받고 서울에도 견줄만한 체급의 선거판으로 끌어올렸다.
사실 김부겸 전 총리가 움직이기 전부터 대구는 눈길을 끌긴 했다. 국민의힘 대구시장 공천 내홍으로 말이다. 그 장본인 이정현 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바로 하루 뒤인 3월 31일 사퇴했다.
지역주의를 타파해 본 이력(김부겸 2016년 20대 총선 대구 수성갑 당선, 이정현 2014년 전남 순천·곡성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당선)을 공유하는 두 사람이 남긴 족적과 밟을 행보는 더 좋은 대한민국 정치를 위한 분석 자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정현에 의해 뒤틀렸고(공천) 김부겸에 의해 재차 뒤틀릴 수 있는(본선) 대구는 특히 더.
◆한 달 만 사퇴→이틀 뒤 번복
이정현 전 공관위원장은 지난 2월 19일 공관위 출범과 함께 '현역 단체장 물갈이'를 예고하며 대대적 혁신을 천명했다.
이어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3월 13일 사퇴 입장을 밝혔다. 이때 대구시장을 비롯한 주요 광역단체장 후보 경선 방식 등과 관련한 당 지도부·공관위 내부 이견 문제가 드러났다. 당시 장동혁 당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 간 당 노선 갈등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일종의 항의성 거취 표명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힘을 실어달라는 항의이자 당 지도부와의 힘겨루기라는 것. 실제로 그는 당 지도부 설득을 받는 모양새로 이틀 뒤인 3월 15일 복귀했다.
◆감 떨어진 부산 공천 해프닝
보통 이쯤에서 갈등은 봉합되고, 공천 과정은 죽을 힘을 다해 스포트라이트를 끌어 와 유권자의 호감을 높이는 마케팅 과정이 돼야 한다. 하지만 그의 복귀 후에도 악재는 쏟아졌다.
부산시장 공천에서 현직 박형준 시장을 컷오프하고 주진우 국회의원을 단수공천한다는 얘기가 3월 16일 알려지자, 주진우 의원 본인까지 포함한 부산 소속 국민의힘 의원 17명 전원이 "부산시장 후보의 경쟁력을 스스로 낮추는 결정을 재고하라"며 경선을 요구했다.
왜였을까. 이번 부산시장 선거는 부산에서 내리 3선에 여당 해양수산부 장관 출신인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출마가 예상되는데, 직전 2022년 8회 지선의 변성완 후보(득표율 박형준 66.36%, 변 32.23%)나 2021년 재보궐선거 때 김영춘 후보(박 62.67%, 김 34.42%)와 체급 자체가 다르다.
더구나 전 의원이 4월 30일 전 사퇴할 경우 지선과 함께 치러질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 출마 후보군으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대권 잠룡들이 거론된다. 이처럼 주목도가 커진 부산 선거판에서 국민의힘 부산시장 공천은 힘 빠지는 단수공천보단 흥행몰이를 위한 경선을 택해야 한단 걸 의원들은 물론 부산시민들도 알고 있었다. 즉, 삼척동자도 아는 걸 이 전 위원장은 몰랐던 셈이니 그의 정치감각에 의구심이 향할만했다.
결국 사흘 후인 3월 19일 국민의힘 공관위는 두 사람(박형준, 주진우) 간 경선으로 부산시장 후보를 결정키로 했다.
◆대구 공천 '실험장' 멸칭
대구시장 공천은 '공천실험장'이라는 멸칭을 얻으며 대한민국 헌정사 공천 파국의 주요 사례로 추가될 전망이다.
역시나 흘러나온 얘기가 갈등의 불씨가 됐다. 중진 의원들을 컷오프시키고 신예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초선 최은석 의원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내용이 3월 16일부터 언론 보도를 도배했다.
이어 3월 22일 주호영 국회부의장과 이진숙 전 위원장을 컷오프시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주 부의장은 컷오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되는 촌극을, 이진숙 전 위원장은 선거판을 떠나지 않고 대구에서 유세를 벌이는 촌극을 펼쳤다.
절차상 하자 문제도 있었다. 충북지사 공천에서 컷오프된 현직 김영환 지사가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 법원은 국민의힘 당규 11조에서 공천신청 관련 제반 사항을 당 홈페이지 등으로 3일 이상 공고하고 공천신청 접수기간은 15일 이내로 해야하는 걸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인재 수혈은커녕 이탈 러시
이정현 전 위원장의 또다른 직무유기는 새 인재를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다. 대표 사례가 경기지사 공천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김동연 현 지사 및 추미애·한준호 의원 간 중량감 있는 경선을 흥행카드로 내세운 반면(추미애 후보 선출), 국민의힘에서는 양향자 최고위원과 함진규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 등이 등판했는데, 애초 후보군으로 거론된 안철수·나경원·김은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등 거물급 가운데 단 1명도 섭외하지 못한 꼴이다.
시정 홍보에 한 획을 그은 '충주맨'을 기용해 전국구 인지도를 얻어 소속 당의 선거 흥행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조길형 전 충주시장은 국민의힘 충북지사 공천 잡음에 분노하며 이탈했다. 그는 지난 3월 17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특정인의 새치기 접수"라는 표현으로 김수민 전 의원의 뒤늦은 후보 접수를 꼬집으며 "제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고 예비후보에서 사퇴했다.
이어 김수민 전 의원은 김영환 지사 가처분 인용 결과가 나오자 "추가 공모 절차 자체가 당규 위반이라는 법원 판단으로 저의 국민의힘 후보 자격은 상실됐다"며 출마를 접었다. 결과적으로 이 전 위원장은 조길형·김수민 둘 다 '날리는' 실책을 저지른 셈이다.
◆민주당 대어 김부겸 수혈 성공
국민의힘 수혈 난국과 정반대 분위기를 더불어민주당은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 캐스팅으로 강하게 누렸다.
3월 중하순 점점 달아오른 하마평, 3월 30일 김 전 총리의 출마 선언, 이어진 언론의 집중 보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공관위의 김 후보 '만장일치' 단수공천 등 일련의 과정엔 잡음도 이견도 없었다. 이 과정을 관리한 김이수 민주당 공관위원장은 여전히 이름이 낯설다. 그만큼 언론 보도에서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두 정당의 공당(公堂) 브랜드 격차가 읽힌다.
반대로 이 전 위원장의 전남광주특별시장 셀프 수혈(출마)은 빛을 못 받고 있다.
◆12년 전 이정현의 전성기
이런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을 실은 이정현 전 위원장이 12년 전 몸소 겪은 바 있다. 그가 전남 순천·곡성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간판을 달고 호남 유일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다.
이 전 위원장은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서갑원 후보와 맞붙었다. 그런데 순천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낸 서 후보를 재출격시킨 건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실책이었다. 서 후보는 18대 의원 임기 중이던 2011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그런 인물을 불과 3년 뒤 같은 선거구에 내보낸 것이다. 아울러 그의 과거 실책이 업보마냥 각종 잡음을 만들었다.
이를 이 전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홍보수석이라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당 지원사격도 거부한 채 자전거 민심 유세로 파고들었다.
그러면서도 이 전 위원장은 여당 후보임을 내세워 예산폭탄 공약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박영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예산폭탄을 준다는데 그거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 제가 반대할 것"이라며 "서 후보를 국회로 보내주시면 찬성할 것"이라고 말한 게 '협박성 발언' '순천·곡성 주민을 개·돼지로 본다' 등의 역풍을 불렀다.
결과는 49.43%(이) 대 40.32%(서), 9%포인트 앞선 승리였다. 고향 곡성에서는 무려 70.5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김부겸·이정현 '평행이론' 성립?
12년 뒤 김부겸 전 총리가 나설 대구시장 선거는 묘하게 이정현 전 위원장의 그때 그 선거를 떠올리게 만든다.
닮은 점이 적잖다. 우선 이번 대구시장 선거는 단체장 사퇴에 따른 궐위를 채우는 성격이라 정규 지선보단 재보궐선거의 냄새를 풍긴다. 홍준표 전 시장은 21대 대선 출마를 위해 지난해 4월 11일 대구시장직을 중도사퇴했다.
이 전 위원장은 잇따라 의원직을 잃는 실책을 저지른 후보 및 당(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반감을 공략해 호남에서 이겼다. 김 전 총리도 대구 내지는 영남의 국민의힘 심판 분위기를 파고들 모양새다. 여기엔 홍 전 시장이 대권 도전을 위해 매듭짓지 않은 대구시정에 대한 평가도 곁들여질 전망.
이 전 위원장이 구사한 예산폭탄 공약은 김 전 총리도 제시한 상황이다. 김 전 총리는 지난 3월 30일 대구 2.28기념중앙공원 출마선언 자리에서 "이번 기회에 김부겸이 한 번 써먹으시라"며 "제가 시장이 돼야 중앙정부에 지원을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 임기 4년 남은 이재명 정부와의 협력 속에서 대구경북 행정통합, 통합신공항 이전, 취수원 문제 등 지역 현안을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당과 맞서야 할 땐 맞서겠다며 순천·곡성에서 이 전 위원장이 당과의 분리 전술을 취한 걸 떠올리게 했다. 김 전 총리는 이달 3일 공천 면접 후 당과 지역 민심이 충돌할 경우 어찌 할지 묻는 취재진에 "불가피하게 대구시민 입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당 입장에 무조건 맞출 수만은 없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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