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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와 대권 나비효과 <上>…DJ·盧·MB 발돋움 무대 [금주의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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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3대 선거인 대통령 선거(대선), 국회의원 선거(총선), 광역·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및 교육감 등을 뽑는 전국동시지방선거(지선) 가운데 체급만 따지면 가장 낮은 지선은 실은 꾸준히 대권의 향방을 다지는 역할을 해왔다. 역대 대통령 상당수가 지선으로 발판을 다져 대권을 거머쥔 것.

지선에서 부는 바람을 주목하면 다음 대권도 가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바로 나비효과다. 오는 9회 지선(6.3 지선)은 누구를 바람에 실어 하늘 높이 날릴까?

김대중 대통령. 연합뉴스
김대중 대통령. 연합뉴스

◆DJ의 대권 발판

지방선거 부활 연도는 1991년이다. 그해 3월 26일과 6월 20일 치러졌는데 이때는 기초·광역의원만 선출하고 자치단체장은 뽑지 않았다. 노태우 정부가 1992년 예정됐던 단체장 선거를 비용 부담을 이유로 1995년으로 연기한 것.

그래서 공식적으로 기리는 지선 부활의 해는 1995년이다. 그해 6월 27일 1회 지선이 실시돼 지자체 살림과 그 견제를 맡을 인물들을 뽑았다.

이 선거는 9개월 뒤 15대 총선의 판을 짜는 역할도 했다. 이때 떠오른 인물이 DJ(김대중)다. 그는 공식적인 정계복귀 선언은 하지 않은 채 마치 백의종군을 하듯 민주당 선거 유세엔 참여하며 이기택 민주당 대표와 주도권 싸움을 펼쳤다.

1회 지선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뭉쳐놨던 영남과 충청을 다시 갈라놨다. 그 반사효과로 애초 3당 합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민주당이 텃밭 호남과 서울(조순 후보 당선)에서 선전했다.

1995년 1회 지방선거 당시 합동특별회견을 가진 대구시장 후보들. 왼쪽부터 이의익(자민련), 이해봉(무소속), 신진욱(민주당), 조해녕(민자당), 문희갑(무소속) 후보. 이 가운데 문희갑 후보가 당선됐다. 매일신문DB
1995년 1회 지방선거 당시 합동특별회견을 가진 대구시장 후보들. 왼쪽부터 이의익(자민련), 이해봉(무소속), 신진욱(민주당), 조해녕(민자당), 문희갑(무소속) 후보. 이 가운데 문희갑 후보가 당선됐다. 매일신문DB

당시 대구를 제외한 영남을 민주자유당(민자당), 충청과 강원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호남과 서울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대구의 경우 문희갑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는데, 여당인 민자당 소속 조해녕 후보가 무려 4위로 참패했다. 그 원인으로 YS(김영삼) 정부의 대구 홀대론이 첫 손에 꼽힐 정도로 여당 민자당의 입지가 줄어들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DJ는 민주당의 지선 승리 바로 다음달이었던 1995년 7월 정계복귀를 선언했고, 같은해 9월엔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어 1996년 15대 총선에선 비록 패배(DJ마저 비례대표 낙선)했지만, 때를 기다려 1년 뒤 1997년 15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DJP연합을 구성한 김대중(DJ, 오른쪽)과 김종필(JP). 연합뉴스
DJP연합을 구성한 김대중(DJ, 오른쪽)과 김종필(JP). 연합뉴스

이 3년(1995~1997)을 재평가해보자.

DJ에게 ▷1회 지선은 승리 시 정계복귀 선언, 패배 시 잠행 지속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벤트 ▷15대 총선은 비록 민주당계 정당이 둘로 갈라졌으나 그 한 축을 잡고 버티며 주도권 싸움을 한 치킨게임 ▷15대 대선은 불과 1년 전 자신들이 저지른 표 분산을 보수가 '이회창 대 이인제' 구도로 자행한 것에 대해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승리에 쐐기를 박은 한판이었다.

지금 어느 잠룡에게 대선이 3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성공 사례를 쓴 DJ의 일정표를 벤치마킹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이른바 대권 창출 3개년 계획.

그리고 당시 문희갑 후보가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당선돼 어깨에 힘을 주고 친정 한나라당에 복당, 연달아 재선까지 한 사례는 최근 역대급 공천 내홍 사례를 겪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군들의 심장을 꿈틀하게 만들었을 수도. '나도 문희갑 선배처럼'.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바보 노무현의 종로

2회 지선은 DJ 다음 대권을 잡은 노무현 대통령을 주목할 수 있는 선거다. 정확히는 2회 지선 한달 뒤인 1998년 7월 21일 실시된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연결고리를 갖는다. 원래 주인이었던 이명박 의원이 15대 총선 당시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조사를 받다 사직해 만들어진 선거다. 이 선거에 노무현 후보가 나서 당선돼 재선으로 체급을 높였다.

그런데 노무현은 자칫 이 선거에 출마하지 못할 뻔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부산 동구 국회의원으로 처음 배지를 단 노무현은 1992년 14대 총선 땐 같은 선거구에서 낙선한 후 체급을 높여 1995년 1회 지선 때 부산시장에 도전했지만 또 떨어졌다.

이렇게 낙선 후 되려 체급을 올려 링에 오르는 '저돌적 도전'의 패턴을 기억하자. 노무현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부산을 떠나 종로에 출마했지만 이명박에게 졌다. 그러자 또다시 체급을 높여 1998년 2회 지선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때 DJ가 고건 전 국무총리를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했고, 이를 존중한 노무현은 한달 뒤 종로 재보궐선거로 선회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건 후보가 당선됐고, 그 효과를 한달 뒤 노무현이 서울 한복판에서 얻은 셈이다.

여기서 안주했다면 대통령 노무현은 탄생하지 않았을 터다. 재보궐선거 2년 뒤인 2000년 16대 총선 때 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다시 부산으로 갔다. 보통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곳에선 그간 들인 노력과 비용을 따져 최소한 재선엔 도전하는 관행과 달랐다. 더구나 그가 향한 곳은 당선 경험이 있는 부산 동구가 아닌 북구·강서구을이었다. 결과는 허태열 한나라당 후보에게 53.22% 대 35.69%로 패배.

하지만 이 선거 덕분에 노무현은 낙선자임에도 큰 주목을 받으며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곤 그가 해오던대로 낙선 후 어김없이 체급을 올려 도전자로 나섰다. 불과 2년 뒤인 2002년 16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종로는 저돌적 도전으로 가득한 그의 정치 인생에서 잠시 숨을 고른 곳일 수도 있고, 아까운 자리였기에 부산으로 향하며 내팽겨칠때 더욱 큰 감동을 만든 요소일 수도 있다.

한편, 정가와 언론에서는 2회 지선을 계기로 비슷한 시기 또는 같은날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도 비중 있게 주목하고 있다. 오는 9회 지선에서도 자리가 빈 10곳 안팎 선거구에 유력 대권 주자 내지는 저돌적 신예가 출전할지 관심이 향하고 있다. '미니총선' 수준의 재보궐선거와 9회 지선, 두 선거 가운데 어디가 더 관심을 얻고 더 큰 영향력을 낼지 경쟁하는 형국이다.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MB의 제2 성공신화

1회 지선은 DJ, 2회 지선(정확히는 한달 뒤 재보궐선거)은 盧가 주인공이었다면, 3회 지선은 MB(이명박)가 주역이었다. 역대 대통령 순서대로(15대 김대중, 16대 노무현, 17대 이명박) 1·2·3회 지선의 핵심 인물을 연결하면 기억하기 쉽다.

MB는 2002년 6월 13일 치러진 3회 지선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됐다. MB로서는 1998년 15대 국회의원직을 불명예스럽게 사퇴했지만 4년 만에 몸집을 크게 키우는 기회를 얻었다. 이 기세를 몰아 5년 뒤인 2007년 17대 대선에서 압승으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에 531만표 차로 승리한 것인데, 당시 역대 대선 최다 표차였던 이 기록은 박근혜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557만표 차로 승리하며 업데이트됐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HD현대중공업 홈페이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HD현대중공업 홈페이지

현대건설 평사원에서 회장까지 오른 샐러리맨 성공 신화의 주인공 MB는 서울시장과 대통령 자리를 연달아 획득하며 대한민국 경제·정치 분야 모두에서 성공 신화를 쓴 희귀 사례가 됐다. 그가 모시던 '왕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통일국민당을 창당해 국회 입성은 해봤으나(1992년 14대 총선 비례대표 당선) 대권은 잡지 못한(1992년 14대 대선 3위로 낙선) 것과 늘 함께 언급되는 사례다.

이런 까닭에 MB의 정치 생애에서 점프대가 된 3회 지선은 정계 입문을 노리는 경제인들이 동경할 만한 스토리이지 않을까.

MB의 서울시장 당선은 3회 지선 한나라당 압승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시 광역단체장 자리를 한나라당이 11개, 새천년민주당이 4개, 자민련이 1개 차지했다.

광역단체장 자리를 1회 지선에선 15개 중 4개, 2회 지선의 경우 16개 중 4개를 수확하며 대한민국 정치판의 굳건한 3지대를 형성했던 자민련은 3회 지선에선 텃밭 충남(심대평 후보 당선) 한 자리만 얻었다. 이어 자민련은 4년 뒤인 2006년 해산했다. 김종필 총재가 1995년 창당하고 11년 만이었다. 그래서 3회 지선은 자민련이 사실상 마지막 불꽃을 피운 선거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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