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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예술은 학교가 아니라 도시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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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예술은 옮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지금 추진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광주 이전 논의가 그렇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은 익숙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선택이 예술 교육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 문제는 그 대가다. 결국 예술이 치르게 된다.

나는 모스크바에서 공부하며 거의 매일 공연장을 찾았다. 음악회가 일상처럼 이어지고 학생과 연주자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가운데, 세계적인 연주와 마스터클래스가 더해진 그 환경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교육 기관처럼 작동하게 했다.

이 경험은 분명하다. 예술가는 학교가 아니라 도시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젊은 예술가들은 특정 도시를 향한다. 뉴욕이 대표적이다. 그곳에는 공연, 산업, 네트워크, 기회가 압축되어 있다. 예술가는 이상이 아니라 가능성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번 이전 논의는 이 핵심을 외면한다. 학교를 옮기면 기능도 이동할 것이라는 단순한 발상. 그러나 생태계는 행정명령으로 복제되지 않는다. 연결이 끊기면 경쟁력도 무너진다.

입시를 앞둔 학생의 선택은 냉정하다. 더 많은 기회와 네트워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한예종이 그 조건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은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이는 취향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교수진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가에게 도시는 활동 기반이다. 공연과 제작, 협업이 집중된 환경을 떠나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경력의 단절에 가깝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협업의 예술이다. 음악만 보더라도 듀오, 트리오, 현악사중주, 오케스트라까지 모든 과정이 직접적인 만남을 전제로 한다.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소리를 맞추며 리허설로 완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누구와 함께할 수 있는가'가 결정적이다. 최고 수준의 학생들은 다양한 연주자와 단체가 밀집된 환경에서 협업할 수 있다. 서울의 예술 생태계가 가진 힘도 여기에 있다.

이 구조가 무너지면 협업은 부담이 된다. 이동과 시간, 비효율적인 조율이 반복되며 창작의 밀도는 떨어진다. 이 구조가 무너지면 협업도 무너진다. 예술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이쯤 되면 질문은 명확하다. 이 정책은 지역을 위한 것인가, 정치적 상징을 위한 것인가. 충분한 논의 없이 추진되는 지금의 방식은 설득력이 없다.

지역 문화 발전은 필요하지만, 핵심 기관의 이동은 해체에 가깝다. 정치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원하지만, 예술은 보이지 않는 연결 속에서 축적된다.

한예종 이전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다. 한국 예술 생태계의 중심을 흔드는 결정이다. 정치는 지나가지만, 생태계는 한번 무너지면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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