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은 인류의 가장 원초적인 스포츠다. 어떠한 도구도 없이 맨주먹으로 싸운다는 복싱의 기본적 정의만 봐도 현존하는 모든 격투기의 원형이 될 만한 종목이다. 비록 예전의 프로 복싱이 가지던 인기가 지금은 이종격투기(MMA)로 옮겨가긴 했지만 MMA 안에서도 "권투만으로는 최강이 될 수 없지만, 권투를 배우지 않고는 최강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복싱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최근 대구의 소년 복서들이 전국 대회를 휩쓸고 있다. 중등부에서는 중리중 복싱부가, 고등부에서는 대구체육고 복싱부가 지난달 경북 영주시민운동장 생활체육관에서 열린 '2026 전국종별복싱선수권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어떻게 훈련했길래 이처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는지 이들의 훈련 현장을 살짝 엿보았다. 선수들의 포부와 지도자들의 비결은 덤이다.
◆ 대구 최초 중등 복싱부, 중리중
중리중 복싱부는 대구 복싱의 역사를 언급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곳이다. 1986년 대구에서 맨 처음 창단된 중학교 복싱부이기도 하며, 대구체육중과 학남중, 덕화중 등에서 복싱부를 만들기 전까지는 중리중 복싱부가 대구에서 유일한 중학교 복싱부이기도 했기 때문. 지금도 대구의 복싱 지도자 대부분이 이 학교 출신일 정도로 중리중 복싱부는 역사가 깊다.
올해 중리중 복싱부는 지난달 열렸던 전국종별복싱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따내며 종합 1위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김승후(3학년·-70㎏)와 김현성(2학년·-42㎏)은 청소년 국가대표에도 선발돼 8일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리는 2026 U-15, U-17 아시아복싱선수권대회에 참가 중이기도 하다.
복싱부 선수들 대부분은 아버지나 친형이 복싱을 권유해서, 혹은 원래 운동을 좋아했는데 관심이 생겨서 복싱부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소년들에게 복싱을 택한 진짜 이유를 물어봤더니 복싱만큼 정직한 답변이 나왔다. "멋있어서요." 두 주먹만으로 링 위에서 공평한 상태로 승부를 보는 이 운동이 소년들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비록 다른 학생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 훈련해야 하고, 같은 반 친구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학교에 남아 다시 훈련을 이어가야 하는 고된 하루를 보내지만 그래도 "링 위에서 내가 훈련한 기술이 상대방에게 먹힐 때의 짜릿함"(김현성)을 맛보고 나면 복싱에 대한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도자인 윤기원 코치 또한 중리중 출신이다. 윤 코치는 중리중 복싱부가 대구 복싱만의 스타일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각 지역마다 추구하는 복싱의 특징이 다른데요, 발 스탭을 이용한 빠른 복싱이 대구 복싱의 특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링 위에서 지치지 않아야 하기에 강한 체력훈련도 병행하죠. 중리중 복싱부가 대구가 가진 복싱 스타일을 잘 지키고 있고, 이런 방식이 전국 대회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중리중 복싱부 선수들은 앞으로 다른 선수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잘 하는 선수가 되는 게 앞으로의 목표다. 그래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김승후)이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복싱 훈련에 임한다. 윤기원 코치도 "선수들이 복싱을 배우는 동안은 복싱에 푹 빠져 즐겼으면 한다"며 "미친 듯 빠져있다 보면 앞으로 훨씬 큰 선수가 돼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 복싱부 고교 진학 1순위, 대구체육고
최근 대구체육고 복싱부의 성적은 놀라울 정도다. 전국종별복싱선수권대회에서는 올해까지 2년 연속 종합 1위를 달성했다. 지난해 전국체전에서도 금2, 은2, 동1 등 총 5개 메달을 획득하며 '복싱 명문'임을 증명했다.
이태재 대구체육고 복싱부 감독은 대구체육고의 최근 준수한 성적의 비결을 "선수 개개인에게 운동에 대한 동기부여가 잘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교 선수들의 경우 진학이나 실업팀 진출이 걸려있다보니 메달에 대한 집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복싱장 화이트보드에 적힌 '자신을 위한, 자신만에 의한, 자신의 복싱으로 가득채워 나가자'는 말처럼 복싱을 하고 잇는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복싱을 통해 나만의 또 다른 것을 배울 수 있게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승패에 앞서 '자신만의 복싱'을 강조하는 이 감독의 지도 방식은 경기장에서도 드러난다. 경기 중 연습한 대로가 아닌 꼼수를 부려 이기려는 모습을 보이면 링 위의 선수가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수건을 던지고 선수를 링 밖으로 내린다. 복싱장 화이트보드에 적힌 또 다른 문장인 '남을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말자'는 그 뜻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
기본기에 대한 강조는 선수들도 잘 알고 있다. 이번 전국종별복싱선수권대회 -85㎏ 금메달리스트 임성훈(3학년)은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실력이 비슷한 상대를 만나서 초반에 쉽게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했는데 코치님이 '턱 당기고 가슴 내밀고 앞 손은 펴고 있어라'는 기본적인 자세를 한 번 더 강조해주셨다"며 "그 덕분에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경험담을 말하기도 했다. 턱을 당기면 얼굴로 오는 펀치를 방어할 수 있고, 가슴을 펴면 호흡이 편해지고 회전력이 강해지며 앞쪽 손을 펴고 있으면 상대가 안쪽으로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대구체육고는 복싱을 하는 중학생들이 가장 진학을 선망하는 고교가 됐다. 이번 전국종별복싱선수권대회에서 -65㎏에 출전, 금메달을 딴 박정민(1학년)은 중학교 때까지 부산 대표로 활동하다 대구체육고로 진학을 선택했다.
박정민은 "러닝 훈련할 때 400m 트랙을 100m 달리듯 전속력으로 10바퀴를 도는데 이를 소화하고나면 '체력으로 밀릴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여기에 스파링 과정에서 선배들의 조언도 큰 도움이 돼서 운동 분위기가 좋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지역 복싱계는 지역 청소년 복서들의 기량은 높지만 대학 진학은 한정돼 있음을 아쉬워한다. 한국체대가 가장 실력이 좋은 고교 선수들이 진학하는 학교지만 모든 학생이 갈 수는 없다. 용인대, 대전대, 우석대 등 복싱부가 있는 대학교가 일부 있지만 지역 대학에는 없다.
이태재 감독은 "복싱을 계속하고 싶어도 대학 진학에서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지역 대학에서도 복싱부가 생겨서 지역의 복싱 선수를 키우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대구 복싱의 활로를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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