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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지우려는 평양과 서울 [가스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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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노동당 외곽 청년단체인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제11차대회의 참가자를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TV가 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노동당 외곽 청년단체인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제11차대회의 참가자를 만나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TV가 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끝끝내 헌법에서 통일을 삭제했다. 1972년 사회주의헌법 채택 이후 54년 만의 일이다. 같은 시기 한국 통일부 장관은 청년 앞에서 통일을 "폭력적"이라 규정했다. 한때 "우리의 소원"이던 통일이 평양과 서울에서 동시에 지워지고 있다. 한쪽은 공포로, 한쪽은 그릇된 신념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난도질하고 있다.

지난 6일 공개된 북한의 새 헌법은 절연의 깊이를 보여준다. 헌법 제9조 통일 조항이 사라졌고 영토 조항을 신설해 남북 대치선을 사실상 남쪽 국경으로 삼았다. 그렇게 외쳐대던 "우리 민족끼리"도 김일성·김정일의 통일 위업을 새긴 서문 16개 문단도 지워졌다. 북한 정권이 70년간 정통성으로 삼아온 가치를 스스로 파기하며 영구 분단을 선언한 것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체제 대결의 완패를 인정한 김정은의 두려움이다. 경제력과 국제적 위상은 이미 비교가 불가능하다. 북한을 덮친 한류는 청년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친구 생일에 한국 드라마를 선물하고 한국 노래 한두 곡쯤은 알아야 또래와 어울린다. 서울 말투를 흉내 내는 것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며 기존 체제에 대한 무언의 항거다.

이미 북한은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3년 평양문화어보호법을 공포하며 스스로 두려움을 내보인 바 있다. 이 두 법은 한국을 포함 외부 문화를 차단하고 언어를 통제하기 위해 제정된 악법이다. 이 법은 한국 영상물을 유포하면 사형에 처하고 남한 말투 사용자는 무기노동교화형까지 처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공포를 심어도 한국을 향한 그들의 동경을 막지 못했다. 결국 통일 삭제라는 두려움의 고백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반도 남쪽에서도 서둘러 통일을 지우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시무식에서 "이재명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체제를 존중한다"라고 선언했고 급기야 통일은 폭력적이라며 통일 불가론을 외치고 있다. 불과 2년 전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두 국가론을 "헌법 위반"이라 맹비난하던 그는 장관이 되자 위헌을 일삼으며 두 국가론의 선봉에 섰다. 근래 그의 모습을 보면 그가 북한의 장관인지 한국의 장관인지 헷갈릴 정도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을 지향한다. 통일은 협상의 수단이 아닌 헌법적 의무다. 대통령도 장관도 그 누구도 헌법 위에 있을 수 없다. 평화통일을 말하는 것과 통일 자체를 폭력으로 모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북한의 궤변에 부응하고자 헌법을 부정하는 자들이 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 그 죄가 절대 가볍지 않다.

서울과 평양의 위정자가 애써 통일을 지울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은 북한 주민이다.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처형되고 서울 말투를 썼다는 이유로 교화소에 가는 곳이 북한이다. 그런 폭압적 정권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순간 김정은은 또다시 계몽 군주라는 이름으로 세탁되고 두 국가론은 그의 폭정에 면죄부를 주는 반인권적 선언이 된다. 통일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국 독재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을 영원히 모른 척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으며 그들을 외면하고 최악의 독재자 김정은의 편에 서겠다는 수치스러운 선언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은 정치적 선언이 아니다. 한반도 전체로 자유와 인권을 확장하겠다는 굳은 헌법의 의지다. 북한 주민들에게도 언젠가는 인간 다운 삶을 안겨주겠다는 약속이며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버리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실낱 같은 희망이다. 우리의 헌법은 그래서 위대하다. 부디 역사와 민족 앞에 죄를 짓지 말라.

북한이탈주민 김금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

김금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
김금혁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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