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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나의 두발 산책] 시가 흐르는 범어천… 물길 따라 흐르는 정호승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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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문학관과 범어천 산책길을 이어 걷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소년 시절 물고기를 잡고 얼음 썰매를 타던 그 물길은 이제 한국인의 희노애락을 담은 시의 산책로가 됐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정호승 문학관과 범어천 산책길을 이어 걷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소년 시절 물고기를 잡고 얼음 썰매를 타던 그 물길은 이제 한국인의 희노애락을 담은 시의 산책로가 됐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졸졸졸 소리를 내며 잔잔하게 흐르는 강변에 시가 붙어 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시구에 담긴 뜻을 곰곰이 곱씹게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에 나섰다가, 사유의 길을 걷게 만드는 이곳은 정호승 시인을 있게 한 범어천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인 정호승 시인은 수성구 범어천 근처에서 나고 자랐다. 1956년 범어천 앞 골목에 위치한 집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범어천에는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과 외삼촌, 친구의 집이 있었고 목욕탕과 슈퍼, 극장도 있었다. 유년시절 그의 곁에는 항상 범어천이 있었다.

대구 범어천 광장에 세워진 정호승 시인의 시비에는
대구 범어천 광장에 세워진 정호승 시인의 시비에는 '울지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며 시작하는 시 '수선화에게'가 새겨졌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시의 뿌리, 범어천

지금은 제방이 높게 쌓인 데다가 깨끗한 자갈이 깔려 있지만, 과거의 모습은 달랐다. 그는 여름이 되면 범어천에서 물장난을 쳤고, 물고기를 잡았다. 겨울에는 얼음 썰매를 탔고, 물가에 부는 바람을 이용해 연을 높게 날리곤 했다. 즐거움도 잠시, 종종 장대비가 내리면 천에서 죽거나 겨울철 동사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그는 범어천에서 자연과 삶의 아이러니함을 생생하게 배웠다.

그는 "범어천은 내 문학의 고향이고, 내 시의 모태다"며 "범어천이 없다면 시인 정호승도 없었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가 세상에 처음 내놓은 시도 범어천의 풍경을 담뿍 담고 있다. 그는 계성중학교 2학년으로 재학할 때, 국어숙제를 위해 시 '자갈밭에서'를 썼다. 시 속에 범어천을 쉴 새 없이 오가며 소년이 느낀 감정을 오롯이 담았다.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가져다 준 범어천을 빙 둘러 걷다보면, 붉은 색의 정호승 문학관에 다다른다. 2층 높이의 아담한 문학관 안에는 정호승의 모든 것들이 깃들어 있다. 기분을 좋게 하는 커피 콩 볶는 냄새와 함께, 시인이 소장한 책 여러 권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책 표지를 구경하며 2층으로 올라서면 본격적인 시의 세상이 펼쳐진다.

범어천을 따라 걷다 보면 붉은색의 아담한 2층 건물 정호승 문학관이 나타난다. 1956년 이 골목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범어천을 벗 삼아 자란 시인의 모든 것을 담은 공간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범어천을 따라 걷다 보면 붉은색의 아담한 2층 건물 정호승 문학관이 나타난다. 1956년 이 골목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범어천을 벗 삼아 자란 시인의 모든 것을 담은 공간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외로움까지

이곳에서는 시인의 생애 전반을 엿볼 수 있다. 정호승 시인이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다. 경희대 국문학과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한 후,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로 당선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시로 조명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급속도로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그 혜택을 보지 못하는 소외계층과 군부 독재에 억눌린 민중의 마음을 세심하게 표현했다. 후기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 사랑과 고통의 본질에 대해 시를 썼다.

대표작으로는 '수선화에게',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등이 꼽힌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들을 여럿 펴낸 덕에, 그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불리게 됐다.

그의 예술 활동은 시를 쓰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여러 장르와 협업하며 시구가 다양한 형태로 대중에게 닿을 수 있게 노력했다. 그 노력 중 하나가 막사발이다. 김용문 막사발 장인과 시인은 2008년 함께 시와 도자전을 열었다. 우리 민족이 밥과 국을 먹고 술을 마시던 막사발에 시구를 담아 우리 민족의 얼을 형상화했다. 시인이 직접 시구를 새긴 막사발은 문학관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문학관 한켠에 정호승 시인이 직접 시구를 새긴 막사발이 전시돼 있다. 2008년 김용문 막사발 장인과 함께 연 시·도자전의 결실로, 밥과 국을 담던 우리 민족의 그릇에 시의 언어를 입혔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문학관 한켠에 정호승 시인이 직접 시구를 새긴 막사발이 전시돼 있다. 2008년 김용문 막사발 장인과 함께 연 시·도자전의 결실로, 밥과 국을 담던 우리 민족의 그릇에 시의 언어를 입혔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정호승 문학관 2층에는 시인의 생애 전반이 펼쳐진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부터
정호승 문학관 2층에는 시인의 생애 전반이 펼쳐진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부터 '수선화에게',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등 대표작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문학의 확장… 음악으로 읽는 시

음악과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시 90여 편은 노래로 작곡됐다. 가요뿐만 아니라 동요, 가곡, 합창곡의 노랫말로 재탄생했다. 가장 최초로 노래가 된 시는 이동원이 부른 '이별노래'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대구가 낳은 두 예술가가 만나기도 했다. 가수 김광석은 유작으로 '부치지 않은 편지'를 내놨다.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부르고 녹음한 노래로, 사후 추모 앨범에 수록됐다. 애절한 목소리로 읊는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시구는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외의 정호승 시인의 시구가 붙은 노래들 역시 문학관에서 들어볼 수 있다.

정호승 시인은 문학관을 찾아주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남겼다. "세상 살기가 쉽지 않다. 시구는 힘든 삶에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문학관에 와서 그런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의 바람은 이뤄졌다. 박물관 1층 벽면에는 손바닥 크기의 종이에는 방문객들의 후련함이 새겨져 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위로를 받았다"거나 아기 손으로 서툴게 적은 "좋은 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시선을 끈다.

소년의 희노애락이 담긴 범어천은 이제 한국인의 희노애락을 담은 문학이 됐다. 문학관과 범어천 산책길은 그다지 길지 않아 무더운 여름철 걷기도 어렵지 않다. 시원한 음료 하나 손에 들고, 물길 따라 흐르는 시를 읽으러 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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