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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 "경주에서 학자의 소명 다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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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경북 경주 사천왕사 터에서 만난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책
지난 24일 경북 경주 사천왕사 터에서 만난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책 '신라 왕경의 산악과 불교'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신라 왕경은 동아시아권에선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계획도시가 아닌,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데서 기인한다. 왕궁인 월성도 자연 구릉에 인공을 조금 더한 모습일 정도로 신라 왕경은 자연환경과 깊숙이 밀착돼 있다. 이런 이유로 왕경인의 삶, 정치 운영 등을 이해하기 위해선 왕경의 산천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신라사 분야 권위자로 꼽히는 주보돈(74) 경북대 명예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정년퇴직을 1년 앞둔 2017년 3월, 신라사 연구에 더욱 매진하기 위해 경주에 정착했다. 이후 지난 10년 동안 연구자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경주 분지를 둘러싼 산천에 주목하며 연구와 저술활동을 해왔다. 주 교수가 최근 출간한 책 '신라 왕경의 산악과 불교'는 이 같은 연구의 결과물이자 2020년 출간한 '신라왕경의 이해'의 후속편 격이다.

지난 24일 경북 경주 사천왕사 터에서 만난 주 교수는 "예전엔 경주를 다소 피상적으로 봐왔다면 이곳에 정착해 살면서부터는 매일 도시 곳곳을 거닐고 산천을 바라보면서 자연환경과 사람, 사상, 종교 등을 하나의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경주에 오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었을 책"이라고 지난 10년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경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이뤄져 있다. 독특한 점은 외곽의 산지 주변에 정착해 살던 사람들이 점차 중앙부로 모여들면서 왕경을 이루고 국가를 형성시켜 갔다는 점이다. 그랬기에 오래 전부터 이곳엔 산악을 중심으로 한 토착신앙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런 토대 위에서 신라는 정치사회적 발전 과정을 거치며 불교를 수용하기에 이른다. 토착신앙은 불교에 주류 신앙의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기존 산악신앙이 곧바로 없어지진 않았다. 양자가 적절하게 결합하고 융합하면서 조화롭게 공존했다. 이 책은 토착신앙이던 산악신앙과 훗날 들어온 불교가 어떻게 접목되고 융합해 갔는지를 경주의 자연 환경을 토대로 추적해본 결과물이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책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책 '신라 왕경의 산악과 불교'

-정년퇴직을 즈음해 삶의 터전을 경주로 옮기게 된 계기가 있었나.

▶1993년 5월 교수 임용 직후부터 가졌던 생각이다. 다만 그때는 신라사뿐만 아니라 가야사도 주요 연구 분야였기에 경주와 고령 두 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후 연구의 무게 중심이 신라사 쪽으로 기울면서 자연스럽게 경주가 1순위가 됐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직접 현장 답사를 통해 자료를 얻고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런 부분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경주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런 점에서 퇴직 후엔 경주에 살며 '삼국유사'와 신라왕경 관련 연구에 마지막 열정을 쏟겠다는 생각을 2000대 초반부터 꾸준히 해왔다. 그 구상을 실행에 옮긴 게 정년을 1년 앞둔 시점이던 2017년 3월이었다. 마지막 1년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경주와 대구를 오갔다.

-경주의 삶이 연구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됐나.

▶그렇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주의 산천을 매일 만나면서 신라 왕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경주에 와서 쓴 책 '왕경의 이해'의 초점 또한 그동안 연구자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경주의 산천이었다.

사람은 자연에 때론 순응도 하고 때론 이용도 한다. 그렇게 문화를 일구고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신라 역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본적이고 필요한 게 자연 경관에 대한 이해다. 특히 신라 초기 국가 형성이나 전개 과정에서 산천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초기 외곽에 정착해 살던 사람들이 점차 중앙부로 모여 들며 왕경을 이루게 되는 독특한 양상은 공간에 대한 연구 없이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예전엔 경주를 다소 피상적으로 봐왔다면 이곳에 정착해 살면서부터는 매일 도시 곳곳을 거닐고 산천을 바라보면서 자연환경과 사람, 사상, 종교 등을 하나의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오랜 기간 신라사를 연구했다. 학계나 후배 연구자를 보며 아쉽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각 분야의 경계를 넘는 융합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역사학 안에서도 학문이 분야별로 나눠지고 담장을 너무 높게 쌓은 탓에 서로 소통이 안 되는 문제가 있다. 비유하자면 코끼리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각자 맡은 부분을 그렸는데 하나로 합쳐보니 코끼리가 아닌 엉뚱한 모양이 나온다거나, 어떤 산의 정상을 향해서 각자 오르는데 결국 각기 다른 곳에 올라 정상이라고 외치는 식이다.

학문이 분화되면서 보다 깊이 있게 들어가는 것엔 도움이 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실상과 어긋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종교 등이 하나의 뿌리를 갖춰 체계적으로 설명이 돼야 하는데, 개별적으로 하나하나에 집중하다보니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말이다. 이런 방법론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비판이 필요하다는 게 개인적 소견이다.

-경주에서 젊은 연구자들과 신라왕경연구회라는 단체를 수년 동안 이어온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선가.

▶그렇다. 경주에 와서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젊은 연구자를 많이 만났다. 이들은 신라를 연구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갖춘 경주에 있고 각자가 상당한 능력도 갖췄지만, 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늘 걱정스러웠다. 소통하지 않는다면 연구가 파편화되고 편협해질 수도 있겠다는 우려렸다. 그래서 이들을 만나면 늘 소통하라고 조언했다.

신라왕경연구회는 그동안의 방법론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대안 제시에 공감하는 경주지역 연구자를 중심으로 7년 전쯤 시작했다. 100여명 회원들이 매월 한 차례씩 차례 학술 모임을 가지며 지금까지 80여 차례를 이어왔다. 그동안은 워밍업 과정이었다면, 오는 29일 국립경주박물관과 함께 공동학술대회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이제 정식 학회로 출발한다.

지금껏 국내에서 신라 금관만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없었다는 점에서, 회원들은 이번 행사 주제를 '영원한 권위, 신라 금관'으로 정했다. 모임의 당초 취지처럼 조형성과 금세공 기술, 신라의 정치·사회·문화적 의미 등을 다양한 연구자의 시각으로 종합적으로 신라 금관을 조명할 계획이다.

지난 24일 경북 경주 사천왕사 터에서 만난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지난 24일 경북 경주 사천왕사 터에서 만난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예전엔 경주를 다소 피상적으로 봐왔다면 이곳에 정착해 살면서부터는 매일 도시 곳곳을 거닐고 산천을 바라보면서 자연환경과 사람, 사상, 종교 등을 하나의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개인적으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 있는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문의 길에 처음 들어설 때인 40년 전쯤부터 '중초(中初)'란 호를 써왔다. '중용지도(中庸之道)'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논리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지지 않을 때 비로소 합리성을 지닌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서 중에 '중용'이란 책이 있지만 그 내용은 크게 어렵지 않다. 다만 실천이 어려울 뿐이다. 스스로를 경계하고 채찍질한다는 의미에서 이 호를 꾸준히 썼다. 학문을 하는 내내 '중초'란 호를 대뇌이며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는 객관성을 늘 견지하려고 노력했던 결과인 것 같다.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다음 책으로 '왕경인의 삶'을 주제로 한 책을 구상하고 있다. 이 책을 끝으로 신라왕경 관련 연구는 마무리하고, 학술서적은 더 이상 내지 않을 계획이다. 이후엔 일반인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쉽게 풀어쓴 대중적인 역사서를 꾸준히 낼 구상을 하고 있다. 경주시나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일반인을 위해 보다 다양한 역사 강좌를 개설한다면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돕고 싶다. 이런 노력을 통해 더욱 많은 이들이 신라 역사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학자로서 마지막 소명을 다하는 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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