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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교수의 별별시선] 돼지 피를 마시는 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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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영화가 있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그건 학교에서나 하는 말이고 잘 만든 영화와 못 만든 영화다. 빤한 소리라고 하실지 모르겠는데 원래 진리는 단순하다. 잘 만든 영화는 재미있고 못 만든 영화는 재미없다. 재미없는 영화는 스크린과 관객석 사이의 거리를 멀리 떼어 놓는다. 스크린 안에서는 배우들이 울고 짜고 난리인데 관객석에서는 코를 후빈다.

잘 만든 영화, 재미있는 영화는 반대다. 스크린 속 배우들은 담담하게 "안녕하세요?"를 주고받는데 관객들은 펑펑 운다. 배우들은 "잘 지내요. 당신은요?"를 읊었을 뿐인데 관객은 스크린 속으로 뛰어 들어가 둘의 대화를 뜯어 말리고 싶다.

◇미신으로 미신을 제압하겠다는 독창적인 안티 미신 영화

상대성원리를 체감하기에 영화만한 게 없다. 재미없는 영화의 시간은 더디 흐른다. 끝까지 보는 것은 고통을 넘어 통증이다. 그런데 재미없는 영화보다 더 보기 힘든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영화가 있다. 2025년 6월 2일 개봉한 '신명(神明)'이다. 이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분류가 필요하다. '민망한 영화'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한국과 일본이 주술 대결을 펼쳐 12월 3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을 막아낸다는 이야기다. 벌써 볼이 화끈거리기 시작하셨을 거다. 한 나라의 정치와 국가 운영을 무속 대결로 풀어내는 방식은 한국영화가 방화라 불리던 1970년대에도 없던 독창적인 서사다. 미신을 비판하기 위해 더 센 미신을 동원한다? 비판의 대상인 미신보다 더 미신 친화적인 이 논리를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설정만으로도 숨이 막히는데 등장인물들의 행태는 한 술 더 뜬다. 대통령 내외의 미신을 파헤치기 위해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저널리스트 3인방은 법과 완벽하게 무관하다. 취재 한답시고 아무 집이나 막 들어가는 것은 기본이다. 대통령 내외도 막상막하다. 시정잡배의 말투도 이보다는 고상하다. 칼럼 제목으로 가져온, 입에 짐승 피를 바르는 영부인의 굿하는 장면에서는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정치 소재 영화, 재미있다. 멀쩡했던 법조인이 운동권에 포섭되는 '변호인', 사실과는 다소 무관한 '택시 운전사', 그 무렵 있을법한 이야기 '1987'은 완성도도 높고 흡입력도 강하다. 공통점은 어쨌거나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거다. 아무리 풍자라도 관객이 어느 정도는 동의해야 영화가 산다.

'신명'은 땅에서 이탈해 허공으로 붕 뜨면서 리얼리티를 자발적으로 포기한다. 그러면서 하는 변명이 '오컬트'다. 오컬트는 간단히 말해 영화 '오멘' 생각하시면 된다. 만든 사람들도 그건 아는 거다. 지금 자기들이 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를. 그래서 '오컬트'라는 장르를 방패삼아 뒤로 쑥 빠져버린다. 이것은 재치가 아니라 치사다.

◇아까운 배우를 소모하는 영화가 제일 나쁜 영화다

'신명'의 제작비는 15억 원이다. 영화라는 게 기본적으로 그림 구경인데 이 돈은 그림이 나올 수 없는 예산이다. 그럼에도 영화에는 얼굴을 아는 배우들이 등장한다. 정치에 적극적인 배우들로 청산가리 김규리나 한때 명계남이었던 남자(바꾼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는 그렇다 치자. 안내상 배우는 너무 안타깝다. 배우의 정치적 자유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한국의 숀 펜 소리까지 들으며 현실적이고 묵직한 연기로 평가 받아온 그가 '신명'에 등장하는 게 개인적으로는 너무 비현실적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이게 사실이냐 물으니 사실이라고 해서 출연했다고 한다. 안내상 배우님, 캐스팅에 눈이 돌아갔는데 그럼 사실이라고 하지 픽션이라고 하겠어요?

◇성찰 없는 조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정치적 편향은 견해의 문제다. 그러나 유치함은 수준의 문제다. 관객은 정치적 입장보다 작품의 품격을 먼저 기억한다. 그리고 품격 없는 프로파간다는 절대 오래 남지 못한다. 49일 동안 74만 명을 동원한 '신명'은 딱 1년 만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가 됐다. '신명'은 신이 내려준 흥과 기운으로 한(恨)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조롱하려고 사람 이름 거꾸로 적어 제목으로 삼았는데 의미는 긍정이라니 이런 것부터가 참, 심각하게 민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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