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경북 안동은 대한민국 관광사의 새로운 장면을 써냈다.
한일 정상회담이 서울도, 부산도 아닌 안동에서 열리면서 세계의 이목이 이곳으로 향했다. 회담장인 하회마을에는 국내외 언론이 몰렸고 회담 직후에는 관광객들의 발길도 크게 늘었다. 외교 행사를 넘어 안동의 전통문화와 관광 자원이 세계 무대에 소개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사실 안동은 오래전부터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불려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도산서원, 봉정사를 비롯해 종가문화와 안동소주, 전통 음식, 선비정신까지 한국 문화의 원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전국 어디를 가도 비슷한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시대지만 안동만큼은 다르다. 골목을 걷다 보면 수백 년 전 선비들이 오갔던 길을 그대로 만나고, 밤이 되면 조선시대 풍류가 현대인의 눈앞에서 재현된다.
안동이 고향인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은 그런 안동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세계가 주목한 하회마을, 시간을 품은 마을
안동 관광의 출발점은 단연 하회마을이다. 이곳은 낙동강이 마을을 둥글게 감싸 안은 모습이 마치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상과 닮았다고 해 '하회(河回)'라는 이름이 붙었다. 600년 넘게 풍산 류씨 집성촌이 이어져 온 이곳은 단순한 민속마을이 아니다.
조선시대 양반가옥과 초가집, 정자와 서원이 함께 보존돼 있으며 지금도 주민들이 생활하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세계문화유산 가운데서도 원형 보존 상태가 뛰어난 곳으로 평가받는다.
마을을 걷다 보면 충효당과 양진당, 화경당 등 역사 깊은 고택이 이어진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기와지붕과 골목길은 마치 조선시대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하회마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부용대다.
높이 약 64m 절벽 위에 오르면 낙동강이 휘감아 흐르는 하회마을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사계절 모두 아름답지만 초여름 녹음이 짙어지는 6월 풍경은 특히 압권이다.
일부 관광객 중에는 "안동에서 단 한 곳만 가야 한다면 부용대"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번 정상회담 당시 양국 정상이 이곳을 찾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하회마을은 한국의 전통과 자연, 공동체 문화가 집약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700년 풍류가 되살아나는 선유줄불놀이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하회선유줄불놀이'였다. 안동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행사인 선유줄불놀이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즐기던 풍류문화에서 시작됐다. 배를 띄우고 시를 읊으며 자연을 즐기는 선유(船遊)와 불꽃놀이가 결합한 독특한 전통문화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부용대와 만송정을 연결한 줄 위에서 불꽃이 쏟아진다. 숯가루를 담은 봉지 수천 개가 불을 머금은 채 낙동강 위로 떨어지는 장면은 현대식 불꽃축제와는 전혀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정상회담 당시에는 평소보다 많은 3천여 개의 불꽃이 준비돼 밤하늘을 수놓았다.
줄불이 강 위를 흐르기 시작하면 관광객들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어 부용대 정상에서 소나무 가지를 묶어 만든 낙화가 떨어지면 관람객들은 일제히 "낙화야!"를 외친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안동 사람들의 전통이다.
정상회담 이후 열린 선유줄불놀이에는 7천여 명의 관광객이 몰렸다. 하회마을 백사장은 물론 둑길까지 사람들로 가득 찰 정도였다. 관광객들은 휴대전화 불빛으로 또 다른 장관을 만들어냈고, SNS를 통해 수많은 사진과 영상이 공유됐다.
한 관광객은 "현대 불꽃축제보다 훨씬 아름답다"며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도산서원에서 월영교까지… 안동은 도시 전체가 관광지
안동의 매력은 하회마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의 학문과 철학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퇴계가 학문 연구를 위해 세운 도산서당에서 시작된 이곳은 1576년 서원으로 완성돼 지금도 수천 권의 장서와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병산서원도 빼놓을 수 없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을 기리고자 세워진 병산서원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만대루에 앉아 바라보는 낙동강 절경은 전국 서원 가운데서도 최고로 꼽힌다.
최근 젊은 세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월영교다.
국내 최장 목책 인도교인 월영교는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관광지다. 은은한 조명이 다리 전체를 감싸며 안동댐 물결 위에 환상적인 야경을 만든다. 연인과 가족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만휴정도 최근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 숲과 계곡, 정자가 어우러진 풍경은 쉼 그 자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봉정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극락전이 있는 봉정사는 천년 고찰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를 통해 힐링 여행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음식과 숙박까지… 머물고 싶은 도시로 진화
최근 안동 관광의 가장 큰 변화는 '체류형 관광'이다.
정상회담 만찬 장소였던 한옥호텔 락고재가 대표적이다. 하회마을 안에 자리한 이곳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수집한 전통 유물과 고가구가 객실 곳곳에 배치돼 마치 살아있는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정상 만찬에서는 안동찜닭의 원형으로 알려진 전계아와 안동한우, 안동소주가 올랐다. 특히 안동 음식문화의 뿌리인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은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할 정도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안동구시장 찜닭골목도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는 명소다. 커다란 철판 위에서 즉석으로 조리되는 안동찜닭은 안동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찜닭골목을 찾았고, 고향 안동을 망문할때마다 이 곳에서 찜닭을 먹는 모습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젊은 관광객들의 방문도 늘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은 하루 일정으로 끝났지만 그 여운은 아직 안동 곳곳에 남아 있다.
정상들이 걸었던 하회마을 골목, 세계인의 탄성을 자아낸 선유줄불놀이, 퇴계와 서애의 정신이 살아 있는 서원, 그리고 밤마다 빛나는 월영교까지.
안동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정신을 가장 온전한 형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안동 여행은 '어디를 보는가'보다 '무엇을 느끼는가'에 더 가깝다.
한일 정상이 선택한 이유도 결국 그 지점에 있다. 안동에는 대한민국이 오래도록 지켜온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댓글 많은 뉴스
'삼전닉스', 이달 말 지방 투자 공식화…대구경북은 빠지나
홍준표, '총리설' 직격?…"오해 풀렸으면 터무니 없는 비방 삼가 달라"
"농지·임야도 예외 없다…李정부, 토지 투기와 전면전"
진중권 "공소취소, 李정권 처참한 몰락 가져올 것…헌법 무너져"
[단독] 박정훈 "주말에 당선인 만났다"... 당선인 "안 만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