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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교수의 별별시선] 신언서판, 화금서기 그리고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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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작가·전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했다. 사람의 됨됨이와 역량을 가늠하는 네 가지 기준이다. 중국 당나라에서 관리를 등용할 때 참고하던 기준에서 유래했다는데 정확히는 이전 제국인 수나라 유산이다. 전략적으로 고구려를 잘못 저울질하고 판단하는 바람에 명을 단축하기는 했지만 수나라는 이후 등장하는 모든 전제 왕조의 기본을 만들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전주, 광주, 진주, 청주 지명도 다 주(州)로 끝나는 수나라 도시 명명법에 따른 것이다. 신(身)은 외모 자체보다 풍채와 몸가짐이다. 언(言)은 말솜씨와 언변이다. 서(書)는 글의 정연함과 문서로 드러나는 사고다. 판(判)은 이치 이해와 도덕적 판단에 대한 판단력이다. 이 넷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인데 죄송하지만 학교에서나 하는 이야기다.

◇외모는 팔자다

이 넷은 전체 평점의 메뉴가 아니라 순서다. 신(身)은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다. 사람을 볼 때 외모보다 내면을 보라는 소리를 자주 하는데 물어보고 싶다. 그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사람은 (대체로) 생긴 대로 놀며 관상은 일종의 과학이다. 외모 중시는 동양이나 서양은 물론 고래(古來)로도 유구하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사람의 평가 기준은 오직 외모였다. 그러니까 풍채와 몸가짐이라는 수사는 진실을 가리기 위한 일종의 수사다. 다만 오로지 타고 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외형 자체만 보게 되면 99%의 남녀가 세상살이에 불리해진다. 해서 언서(言書)까지 보는 것이다.

판(判)을 그걸 보는 사람이 보여주는 사람보다 윗길이어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아 약간 미지의 영역이다. 연예인 외모 평가로 답변자의 연령대 알아맞히기도 가능하다. 미남미녀 배우로 장동건과 심은하를 뽑았으면 5060이다. 차은우와 카리나를 찍었다면 20대 미만이다. 70대는...안 살아봐서 잘 모르겠다.

◇한때 소양이었던 문화 예술

신언서판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사대부나 문인의 기본소양을 보는 금기서화(琴棋書畵)다. 생각하는 순서가 그와는 조금 다른데 개인적으로 예술적 재능을 평가하는 기준은 화금서기(畵琴書棋)다. 그림, 음악, 글쓰기, 바둑으로 이건 총평의 네 가지 하위 메뉴가 아니라 진짜로 순서다.

그림은 예술적 형상화의 기본으로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누구나 가능하다. 6070년대 영미 대중음악의 히어로들은 대부분 그림을 잘 그렸다. 에릭 크랩튼, 조지 해리슨은 미술학교 출신이다. 노벨상까지 받은 밥 딜런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레스토랑 냅킨에 그림을 그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걸 주웠다가 경매에서 팔아먹은 웨이터도 있다.

금(琴)은 최소한의 기술 연마가 필요한 영역이다. 악기 연주를 생각하시면 되겠다. 서(書)는 지적 소양과 예술적인 감각이 더해진 것으로 몸보다 뇌에 더 가깝다. 고대 그리스에서 육체보다 영혼에 근접한 쪽에 더 점수를 준 것은 많이 알려진 얘기다.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하버드 졸업생들이 지금보다 글을 '좀 더' 잘 쓰는 사람이라고 답했다는 설문 결과는 유명하다.

마지막이자 최고 단계는 바둑을 뜻하는 기(棋)다. 바둑을 둘 줄 몰라 이게 그렇게 위에 있는 영역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은 제가 아는 것 이상을 체감하기 어렵다. 다만 어렴풋하게 짐작을 했던 적은 있는데 세칭 일류 대학에 간 친구에게 그의 아버지가 했다는 말이다.

너는 머리가 신통찮으니까 공부나 하라고. 그 친구의 형은 프로 바둑 기사였다. 바둑은 중국에서 예술적 기예인 동시에 천하 경영의 논리였다. 서양의 체스는 상대의 말을 죽여서 승부를 내는 게임이다. 바둑은 빈 공간을 더 많이 만드는, 쉽게 말해 땅을 더 많이 차지한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신언서판과 화금서기 둘 다에 서(書)가 들어있는 것은 인생 최고의 복(福)이었다. 게으름과 수많은 판단 미스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평균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게 무효인 세상이다. 실은 줄초상이다. 사진술로 현실 모방 회화가 죽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로 바둑이 죽었다.

인공지능 음악은 인간 제작 음악을 넘어섰다. 글쓰기? 장담하는데 내년에는 A.I가 나보다 훨씬 글을 잘 쓰게 될 것이다. 화금서기의 세상도 살아보고 그게 다 무력화된 세상도 보게 된 건 행운이다. 두 세계를 다 경험하는 건 재미있지만 즐겁지는 않다. 밥벌이가 끊기게 생긴 마당에 미치지 않고서야. 소제목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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