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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전국 어린이 사진공모전 70년]<1980년 26회>은상 유길수 작 "졌다!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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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적시던 봄, 웃음이 흩날리던 날

은상 유길수 작
은상 유길수 작 '졌다! 그만'

1980년 봄, 대구 동구 신천동 한 뒷 골목.골목의 낡은 벽돌담 아래는 세상 그 무엇보다 치열한 아이들의 전장이었다. 그곳에는 동네 친구인 경태, 영호, 그리고 현수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골목길은 단순히 집으로 향하는 통로가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하고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무대였다.

붉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경태는 검은 수영장 고글을 쓰고, 한 손에는 물총을, 다른 한 손에는 접시를 방패 삼아 위풍당당하게 섰다. 경태 양쪽으로 영호, 그리고 현수도 저마다 손에 플라스틱 물총을 하나씩 들고 골목 한복판에서 싸울 만반의 준비를 하고 노려보고 있었다. 물총은 지금처럼 화려하거나 강력하지 않았다. 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면 가느다란 물줄기가 힘겹게 뿜어져 나오는 단순한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받아라!"

경태가 먼저 물줄기를 쏘자 영호는 하얀 플라스틱 접시를 방패처럼 들고 몸을 움츠렸다. 영호의 물총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왼쪽에서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현수도 오른쪽에서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경태는 하얀 플라스틱 접시로 번갈아 들어 막아보려 했지만, 한쪽을 막으면 다른 쪽에서 물줄기가 얼굴과 어깨를 적셨다.

영호와 현수는 마치 오래 호흡을 맞춘 장수들처럼 양쪽에서 빈틈을 노렸다. 물줄기는 허공에서 교차하며 경태를 완전히 포위했다.결국 경태는 더 버틸 수 없었다.두 팔을 번쩍 들어 접시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배시시 웃었다.

"졌다! 그만!"

항복의 외침이었다.하지만 영호와 현수는 그 한마디를 듣고도 장난기가 가시지 않았다. "진짜야?" 하며 한두 번 더 물총을 쏘아 보냈다.골목길 아이들의 물총놀이는 마치 할리우드 영화 속 한편을 연상케 했다.

물총놀이가 끝나면 셋은 숨을 헐떡이며 골목가에 주저앉았다. 젖은 운동화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었다.젖은 옷을 털며 골목 끝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누구의 물총이 더 멀리 나가느냐를 두고 옥신각신했다.

그 시절 골목에는 수도꼭지 하나와 플라스틱 물총, 하얀 접시 몇 장만 있으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만큼 행복했다.

세월은 흘러 그 골목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 대신 자동차 소리가 골목을 메우고, 수도가에서 물총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사진 속 경태와 영호, 현수의 환한 웃음은 1980년 어느 봄날의 시간을 그대로 붙잡아 두고 있다.

그 한 장의 사진은 말없이 이야기한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친구와 마주 서서 물총 하나를 겨누던 골목, 흠뻑 젖은 옷을 입고도 배를 잡고 웃던 그날의 봄날이야말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가장 눈부신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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