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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이슈] 대권은 덧셈으로 이어지고 뺄셈으로 끊긴다…'3당 합당'부터 '명청대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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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재창출 또는 탈환을 가른 결정적 장면들

1990년 1월 22일 3당 합당 발표 후 청와대를 나서고 있는 (왼쪽부터)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 노태우 대통령(민주정의당 총재),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국회보
1990년 1월 22일 3당 합당 발표 후 청와대를 나서고 있는 (왼쪽부터)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 노태우 대통령(민주정의당 총재),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국회보

대한민국 대권 흐름은 언뜻 거대한 이념의 강물로 보인다. 보수와 진보, 산업화와 민주화, 영남과 호남, 중도와 강경의 노선들이 시대마다 교차했다. 그런데 정권 재창출 또는 탈환의 성패를 가른 순간들을 자세히 보면 꼭 긴 선(線)만 있지 않다.

몇 개의 점(點)이 보인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상대를 밀어내고, 다음 주자에게 길을 열어주고, 반대로 그 길목을 막은 장면이다.

단순한 공식이 도출된다. 연합을 넓히는 정치는 정권을 이어주거나 적어도 진영의 체력을 보존했다. 반면 내부 자산을 줄이고 상대를 밀어내는 정치는 균열을 키웠고, 그 균열은 대선에서 표로 환산됐다. 덧셈 정치가 실패를 막아주는 만능 공식은 아니지만, 뺄셈 정치는 패배의 확률을 거의 예외 없이 높였다.

물론 이 공식만 갖고 대권을 설명할 순 없다. 정치 그 자체와 민생과 안보 등 각종 현안이 만드는 여론에 후보 개인기, 더 큰 범위의 시대 분위기, 또한 이를 순식간에 뒤집기도 하는 사건사고 등 다양한 변수가 늘 끼어든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하다. 대권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

◆적을 동맹으로, 3당 합당

1990년 1월 22일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은 3당 합당을 선언했다.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합쳐지는 장면은 대한민국 보수 정치사에서 가장 거대했던 덧셈 정치 사례다. 이 합당은 민주화 세력 일부와 군부 권력, 충청 보수까지 하나의 그릇에 담았다. 명분은 섬세하지 못했고, 전례도 찾기 힘들었으며, 익숙한 정치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그러나 정치공학의 결과만 놓고 보면 매우 강력했다.

김영삼(YS)이 최대 수혜자였다. 바깥에서 김대중(DJ)과 경쟁하는 야당 지도자의 삶을 먼저 마무리할 수 있었다. 노태우 정권이 YS를 잠재적 위협으로만 보지 않고 승계 가능한 주자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 결과 1992년 14대 대선에서 YS는 보수·민주화·영남·충청 일부가 결합한 거대 연합의 후보가 돼 당선됐다. 호남 기반 DJ는 더욱 열세가 됐다.

대한민국 대권의 중요한 공식이 여기서 작성됐다. 적을 다 이길 수 없다면, 일부는 동맹으로 바꿔라.

1997년 15대 대선 후보 토론회 당시 (왼쪽부터)김대중 국민회의 후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연합뉴스
1997년 15대 대선 후보 토론회 당시 (왼쪽부터)김대중 국민회의 후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연합뉴스

◆갈라진 보수, 연합한 DJ

그 반대 장면이 5년 뒤인 1997년 15대 대선에서 나왔다. YS 정부 말 보수 진영은 이회창을 후보로 내세웠지만, 경선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인제가 국민신당 후보로 독자 출마하며 균열됐다. 애초 김영삼과 이회창의 갈등은 3당 합당과 딴판인 후폭풍을 짐작케 했고, 여기에 이인제의 이탈이 더해졌으며, IMF 외환위기 같은 악재까지 겹쳤다.

반대로 3당 합당 효과를 뼈저리게 느낀 바 있는 DJ는 김종필(JP)과의 DJP연합으로 민주화 세력과 충청 보수를 결합시켜 몸집을 키웠다.

한쪽은 갈등과 이탈이 누적되며 온갖 뺄셈 정치 내역이 적힌 감점표를 받아야 했다. 반면 다른 한쪽은 이미 검증된 덧셈 정치 공식으로 대권 시험지를 풀어나갔다. 그것도 상대 진영의 균열 탓에 난이도가 낮아진 시험지를. 결과는 헌정사 첫 평화적 정권교체였다.

DJP연합에서 DJ는 자신에게 부족한 지리와 이념의 공간을 JP로 보완했다. 대선은 선명한 순혈보다 불편한 연합이 이긴다는 공식을 남겼다.

2002년 3월 16일 새천년민주당 16대 대선 후보를 뽑는 광주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노무현 후보가 노사모 회원들과 승리의 V자를 그리고 있다. 연합뉴스
2002년 3월 16일 새천년민주당 16대 대선 후보를 뽑는 광주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노무현 후보가 노사모 회원들과 승리의 V자를 그리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가 선택한 비주류 盧

다시 5년 뒤인 2002년 16대 대선은 앞선 3당 합당이나 DJP연합과 다른 공식을 제시했다. DJP연합은 수명을 다했고, DJ는 임기 말 권력 누수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당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이라는 비주류 대권 주자가 떠오를 공간은 차단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DJ의 직계 후계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YS가 발탁한 인물이다. 호남 주류가 오랫동안 준비한 후보도 아니었다. 영남 출신, 비주류, 소수파에 낙선 경험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2002년 3월 16일 광주가 그에게 문을 열어줬다. 새천년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은 이인제를 꺾고 1위에 올랐다. DJ 정치의 심장인 광주가 노무현을 선택했다. 단순한 지역 경선 승리가 아니었다. DJ 이후 민주당이 자기 안의 비주류에게 대권의 공간을 열어준 순간이었다.

이때 으레 나올 법했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DJ는 노무현을 직접 만든 건 아니었지만, 발목을 잡지도 않았다. 노무현은 DJ 정부 말기 권력형 비리 의혹까지 인수하려 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DJ에게 실패 딱지를 붙이며 선을 긋지도 않았다. 정치적 부담은 덜어내되 정통성은 이어받았다. 강한 포옹은 아니었지만 정면충돌도 아니었다.

노무현은 이후 정몽준과의 후보 단일화라는 익숙한 덧셈 정치 행보도 밟았다. 투표 전날 단일화 철회라는 돌발 변수가 터졌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지층 결집 효과를 얻었다.

DJ 다음 노무현을 청와대로 보낸 정권 재창출 공식은 3당 합당이나 DJP연합 같은 거대한 외부 결합은 아니었다. 대신 내부의 문을 닫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개혁의 언어, 균열의 산수

DJ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진 길은 이후 왜 끊겼을까. 카메라는 2003년 새천년민주당에서 갈라진 열린우리당 창당 현장을 비춘다. 그들의 명분은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개혁이었으나, 실은 노무현을 만든 당과 노무현을 지키려는 세력이 서로 다른 집을 차린 것이었다. 뺄셈 정치였다. 개혁의 언어는 강했으나, 연합의 산수는 나빠졌다.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한 번 빠진 표는 다시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정권은 2007년 17대 대선 때 이명박(MB) 한나라당 후보가 역대 최대 득표율 차이(22.53%포인트)의 대승으로 탈환했다.

2007년 8월 20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17대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명박 전 서울시장(왼쪽)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8월 20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17대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명박 전 서울시장(왼쪽)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넘겨준 MB, 막아선 朴

MB에서 박근혜로 이어진 보수 정권 재창출은 지금까지 살펴본 공식의 예외로 보인다. 두 사람은 친이·친박 갈등의 역사가 보여주듯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 MB정부와 보수 진영은 박근혜를 밀어낸 게 아니라 당의 간판을 넘겼다. 박근혜가 키를 잡은 2011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와 2012년 새누리당 전환은 보수의 생존 본능이 작동한 장면이다. 뺄셈 정치에 치중하다 덧셈 정치라는 응급 조치를 취했다. 이는 박근혜가 2012년 18대 대선에서 대권을 잡는 서사의 초입이기도 했다.

그랬던 박근혜가 뺄셈 정치를 구사했다. 2015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향한 '배신의 정치' 프레임, 2016년 20대 총선 공천 파동 및 일명 옥새 파동은 박근혜가 차기·비주류 대권 주자들을 위한 공간을 막은 장면이다. DJ가 노무현의 발돋움을 막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유승민, 김무성 등 내부 자산은 확장 카드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됐다. 여기에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이 이뤄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7월 1일 청와대에서 대화하며 오찬장인 상춘재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7월 1일 청와대에서 대화하며 오찬장인 상춘재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9년 7월 25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간담회장으로 향하는 모습. 뒤로 (왼쪽부터)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전 조국혁신당 대표)를 비롯해 김상조 정책실장, 유영민 비서실장 등도 보인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지난 2019년 7월 25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간담회장으로 향하는 모습. 뒤로 (왼쪽부터)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전 조국혁신당 대표)를 비롯해 김상조 정책실장, 유영민 비서실장 등도 보인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덧셈도 만능은 아냐

19대 대선에서 정권을 탈환한 문재인은 노무현을 통해 정권을 재창출했던 DJ를 벤치마킹한 듯하다. 임기 말 민주당의 20대 대선 대표 선수가 된 이재명 후보와 공개적으로 만나고 큰 틀의 선거연합을 유지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권 재창출 실패였다. 당선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낙선한 이재명 후보 간 득표율 차이는 불과 0.73%포인트였다.

덧셈 정치 공식에만 기댈 수 없는 시대가 된 걸까. 연합을 꾀해도 부동산 민심, 정권교체 여론, 세대·젠더 균열, 후보 개인 리스크, 야권 단일화 같은 변수가 더 크게 작동하면 질 수 있다. 덧셈 정치를 하면서 다른 것도 잘해야 이긴다.

◆뺄셈은 더 위험해

이걸 뒤집어 읽으면 뺄셈 정치는 훨씬 더 위험하다는 얘기가 된다. 윤석열 정부의 실패는 계엄 사태와 그에 따른 대통령 파면이 큰 지분을 차지하지만, 이미 보수 진영 내 차기·비주류 대권 주자를 위한 공간을 막는 장면에서 예고됐다. 대선 과정에서 협력한 이준석, 안철수와의 관계는 정권 출범 뒤 안정적인 연합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한동훈 역시 당 차기 대권 주자의 공간을 넓히기보단 대통령과의 관계 속에서 소모됐다. 그래서 윤석열 파면에 의해 치러진 2025년 21대 대선은 보수 단일화가 작동하지 않은, 아니 작동할 수 없는 사례였다.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로 꼽히는 (왼쪽부터)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민석 전 국무총리, 송영길 국회의원이 지난 7월 3일 서울 용산구 한 호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로 꼽히는 (왼쪽부터)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민석 전 국무총리, 송영길 국회의원이 지난 7월 3일 서울 용산구 한 호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 큰 운동장이 승부수

이런 흐름을 살피면 딱 1개월 뒤인 8월 17일 치러질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도 단순한 당권 경쟁으로만 보기 어려워진다. 2028년 23대 총선 공천권, 2030년 22대 대선 구도와 맞물려 있어서다. 어떤 인물과 세력이 흥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꽤 분명하다. 이젠 덧셈 정치로도 어려운 정권 재창출을 뺄셈 정치로 달성하긴 더욱 어렵다는 거다. 어느 쪽이든 상대를 제거해야 이긴다고 믿는 순간,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의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다.

그래서 명청대전(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갈등)이라는 좀체 사라지지 않는 표현은 분열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달 1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 장면은 통합과 분열 모두 읽히는 맥락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부정·무능 선관위 해체 수준의 쇄신 및 재선거 촉구를 위한 6·3 참정권 박탈 사태 청년·대학생 시국 대토론회에서 발언을 마친 뒤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다. 연합뉴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부정·무능 선관위 해체 수준의 쇄신 및 재선거 촉구를 위한 6·3 참정권 박탈 사태 청년·대학생 시국 대토론회에서 발언을 마친 뒤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동훈 무소속 국회의원이 지난 6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2026 국민공공정책포럼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동훈 무소속 국회의원이 지난 6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2026 국민공공정책포럼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징계내전' 정국의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파면 같은 초대형 악재가 상대 진영에서 다시 발생하지 않는 한, 반사 이익만으로 정권 탈환을 장담하기 어렵다. 장동혁 대표를 포함해 3연임에 성공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안철수 국회의원 등 당내 자산은 물론, 국회에 첫 입성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제3지대 보수 진영을 형성하고 있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 범보수 자산을 하나의 판 위에, 즉 더 큰 운동장에 올릴 수 있는지가 요즘 화두가 된 보수 재건(정권 탈환과 동의어)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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