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차가 줄었다. 밤이면 그득그득 차던 아파트 주차장에도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평일인데도 문 닫은 식당과 상점이 보인다. 용광로처럼 달아오른 이 도시에 '나'만 남겨진 것 같은 위화감이 든다. 우린 이 현상을 '휴가철'이라고 부른다. 낮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어서고 기름값도 물가도 장난 아니지만 사람들은 기어이 떠나고야 만다. 무언가에 홀린 듯.
사실, 나는 지겹도록 여행했던 사람이다. 지금 직장에서 일하기 전, 내가 했던 일은 '아이들과 여행하는 일'이었다. 주말마다 초등학생들을 승합차에 태워 구석구석 답사를 다녔고, 방학 때는 청소년들과 배낭을 메고 해외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15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 내 몸속 DNA의 절반은 여행으로 구성돼있을 것이다.
그때 내가 했던 여행은 내 취향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여행이었다. 일이니까 주어진 일정대로 떠났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에 의의를 뒀다. 이제 나에게 여행은 '일'이 아니다.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를 고를 수 있고, 가고 싶은 시간에 떠날 수 있다. 지치면 돌아올 수도 있고 엉뚱한 곳으로 발길을 돌릴 수도 있다. 취향에 따라 여행할 수 있게 됐다.
내가 변한만큼 세상도 빠르게 변했다. 언제부턴가 AI가 생활 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우린 이미 AI 알고리즘의 추천 속에 살고 있다. 알고리즘이 취향에 맞는 도시를 권하고, 후기를 분석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만족한 숙소를 알려준다. 어느새 나도 앱이 골라준 숙소를 예약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른 것만 보고, 고른 사람만 만나고, 고른 의견만 듣는다. 취향은 정교해지는데 세계는 좁아진다. 실패하지 않는다.
소설가 김영하는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이 대개 기대와 어긋나는 데서 시작된다고 썼다. 계획은 틀어지고, 기대한 것은 얻지 못하고, 대신 예상하지 못한 것을 얻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낯선 호텔 방에서 누리는 익명의 상태, 그러니까 자신의 직함과 역할을 잠시 벗어둔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경험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에 가깝다고 말한다.
검색으로 맛집을 정하고, 남들이 찍은 각도로 사진을 찍고, 실패의 여지를 미리 지워버린 여행. 어긋남을 허락하지 않는 여행은 결국 '확인'에 가깝다. 이미 본 것을 다시 보러 가는 일에는 이야기가 깃들 자리가 없다.
이번 휴가철, 멀리 가지 못해도 좋다. 근교로라도 떠난다면 일정표에 빈칸 하나 정도는 남겨두면 어떨까. 길을 잃어도 되고, 아무것도 아닌 자로 걸어도 되는.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 빈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떠나지만, 정작 돌아와 오래 남는 것은 계획에 없던 페이지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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