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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규의 장소의 사색] 대구 사람들의 '장소애'(場所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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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대구적십자병원 자리. 지금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옛 대구적십자병원 자리. 지금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장소애(topophilia, 場所愛)라는 말이 있다. 사는 곳, 살던 곳에 대한 살가운 애정과 애틋한 그리움을 뜻하는 말이다. 6.25 전쟁 후 이남으로 피난 온 이북 출신 실향민들의 장소애가 아주 각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버지가 달성공원 앞 가게에서 조그마한 선술집을 겸업(兼業)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주 고객들이 중년의 실향민들이었다(지금 생각해 보니 40대 초중반의 앳된 아저씨들이었다). 가게를 통해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에 들며 나며 그분들의 고향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때 어린 마음에 한 의구심이 들었었다. "그렇게 살기 좋은 고향을 떠나서 왜 이런 춥고 더운 대구에서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때만 해도 대구가 추울 때는 아주 춥고 더울 때는 아주 더운 극단적인 날씨를 가진 도시로 유명했다. 대한민국 도시 중에서 가장 뚜렷한 분지 지형이라서 그렇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아마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그런 내용이 실려 있었지 싶다.

옛 복명학교 자리. 지금은 대구 동부교육지원청이 들어서 있다.
옛 복명학교 자리. 지금은 대구 동부교육지원청이 들어서 있다.

어쨌든 실향민들이 모이면 서로 자기 고향의 풍물과 인심을 자랑하는 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황해도와 평안도 사람들이 많았는데 주로 먹는 것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요즘도 그쪽(서도지방) 음식을 하는 맛집들이 경향 각지에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먹거리 문화가 예로부터 서해안을 끼고 있는 서도지역에서 많이 발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때 들은 이야기 중에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냉면은 아주 추운 날 불을 많이 땐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먹어야 제 맛이다.", "이남에서는 보리쌀로 밥을 해 먹는데 우리 고향에서는 절대 보리쌀로는 밥을 해 먹지 않는다. 조팝(좁쌀로 지은 밥)은 해 먹었다.", "팥을 삶아서 광주리에 담아 부엌 천장에 걸어두고 팥밥 맛있게 해주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정월 한 달은 손바닥만 하게 크게 빚은 만두국만 먹었다." 등등이다.

옛 성누가병원 건물. 현재는 대구 가톨릭 유지재단에 기부되여 주민 복지의료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옛 성누가병원 건물. 현재는 대구 가톨릭 유지재단에 기부되여 주민 복지의료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요즘 드는 생각인데 그런 유별난 서도 실향민들의 장소애에 필적하는 것이 통영 사람, 대구 사람들의 장소애가 아닌가 싶다. 먼저 통영 이야기부터 해보자. 통영 사람들의 장소애는 원래부터 유명하다. 고향 물산과 인정, 자연환경에 대한 통영인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시인 백석이 통영 처자에게 마음을 뺏겨 세 번이나 통영을 찾았지만 결국은 통영 남자에게 밀리고말았다는 이야기를 <장소의 사색 7 - 학봉의 추억>에서 한 적이 있는데 그런 통영인들의 장소애를 두어 번 직접 확인한 적이 있다. 학창 시절에 통영 출신 시인 김춘수 선생님의 어린 시절 회고에서 한 번, 청주에 있는 대학에 근무할 당시 한 선배교수의 유난한 고향 사랑을 통해서 한 번, 그렇게 두 번 확인했다. 당시는 통영을 충무라 부를 때인데 두 분 모두 "우리 토~영에서는"이라고 말했다. 통영인들은 자기들만의 독특한 어조와 억양을 가지고 통영을 토~영이라 불렀다. 그분들은 통영만큼 살기 좋은 땅은 지상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풍부한 해산물, 온화한 자연 환경, 넉넉한 인심,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로 서의 통영은 그야말로 지상 낙원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대구 사람의 장소애로 넘어가자. 육사 교관으로 군복무 시절 서울로 잠시 솔가해서 살 때의 일이다. 제대를 얼마 앞두고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부산 출신 동료가 뜬금없이 내 장소애를 지적했다. 당시에는 일반대학 출신 교관들에게 복무 연장을 많이 권했는데(같은 과의 동료 2인은 1년씩 연장을 했다) 내가 단호히 "일찍 제대하고 대구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거부하는 것을 보고 "대구 애들은 많이 그렇더라~"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 말은 난생 처음 듣는 것이어서 좀 생뚱맞았다. 그때는 장소애라는 것도 모르던 때였다. 부산에서 올라와 서울서 대학을 나온 그 친구 말로는 대학 시절에도 나와 똑같은 대구 장소애 환자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대구 출신들은 대구를 못 잊어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부산 출신들은 안 그런가?",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걸 두고 유별난 일인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이 엉뚱하다싶어 그렇게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부산 사람은 안 그렇다."였다. 늙어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현재는 서울살이가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도 덧붙였다(최근에 이 친구가 경기도 가평 어디에 추사의 <세한도>에 나오는 집과 비슷한 집을 짓고 사는 모습이 ebs <집 탐구>에 소개된 적이 있다).

남산동 골목
남산동 골목

일반적으로 장소애는 일종의 집단적 미숙성이나 페티시즘(과도한 물건 집착) 쪽에서 많이 거론한다. 그때는 무심코 듣고 넘겼는데 요즘 생각해 보니 옛날에 들었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다른 것보다도 요즘 대구의 정치적 편향성을 두고 봤을 때 그렇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대구는 그렇지 않은 도시였다. 순수하게 고향사랑이 넘치던 도시였다. 얼마 전에 고교 동기생 친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소개한다. '순수한' 장소애가 넘치는 글이었다.

"그 골목은 남산동에서도 조금은 넓은 골목이었다. 적십자 병원 입구 오른쪽에서 오르막을 올라와서 남산교회를 지나서 복명학교 그리고 어머니가 단골로 다니던 성누가병원(지금은 경대병원 네거리로 이전한)을 지나서 초가집이 하나있고 이발소 옆 기와집이 우리의 어릴 적 인생 본부였다. 골목이 정말 길고 많았던 동네, 만화집 지나 왼쪽 골목길이 텍사스 골목이었다. 텍사스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 신작로를 건너면 남문시장이었다.(중략) 길가로 내려가면 헌책방이 시작되고 대도극장 뒷길도 나오고 그 골목에서 뭘 팔았는지 알아? 바로 단팥죽이지. 한 그릇에 5원인가 10원인가 하던 단팥죽 위에 땅콩가루를 뿌려주면 가격이 좀 더 올라갔지. 그리고 납딱만두를 팔았지. 안에는 당면과 파, 아니면 양파나 부추를 넣어 소를 만들고 둥근 철판에 구워서 다섯 개 정도를 나란히 놓고 뒤집개의 날로 가운데를 꾹 눌러서 반으로 잘라서 접시에 담아줬지.(후략)"

이 글의 원 저자는 공무원 생활을 오래하고 퇴직해서 서울서 살고 있는 친구다. 그걸 다른
친구가 조금 수정해서 페이스북으로 옮겼고 최종적으로 내가 문장을 다듬어서 신문에 싣는다. 내가 보기에 이 두 친구도 장소애가 각별한 사람들인 것 같다. 위의 글에서 "적십자 병원 입구 오른쪽에서 오르막을 올라와서 남산교회를 지나서"라고 묘사된 부분은 지금의 현대백화점 앞길이다. 반월당이라고 불리는 곳이고 옛 관덕정 터다. 관덕정은 활터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옛날에는 관병들의 훈련장소, 사형장소(주로 참수형) 등으로 사용되던 콤플렉스(복합) 공간이 었다. 핵심 지배세력의 공간인 중심부와 피지배계급 대다수가 살던 주변부의 경계가 되는 장소였다. 이곳이 처형장으로 사용된 이유는 일종의 전시효과를 볼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너희들도 고분고분 굴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런 신세가 될 수 있다"라고 겁을 주기 좋은 장소였다는 것이다.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와 많은 천주교도들(을해박해 7명, 기해박해 3명, 병인박해 이윤일 요한을 포함해 7명)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새로 건립된 관덕정순교기념관에는 성 이윤일 요한의 유구가 모셔져 있다. 그 피의 장소가 지금은 대구의 중심가가 되어 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장소애는 내 평생을 링반데룽(Ringwanderung, 산에서 같은 지점을 계속 맴도는 것)으로 내몬 혐의가 짙다. 서울이나 청주에서의 직장생활이 전혀 불편하거나 미흡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약간 손해 보는 기분으로) 대구로 내려왔다. 내가 태어나기는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아주 어린 시절에는 서울 근교에서 살았기 때문에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한때 우물쭈물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어디 작가 소개 같은 곳에 출신을 쓸 일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대구 출신"라고 쓴다. 안동 태생 이육사 시인이 자기를 소개할 때 "대구 사람 이육사외다"라고 했듯이.

소설가·대구교육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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