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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60>또 하나의 나를 그려 친구 삼는 고독한 김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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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김용준(1904-1967),
김용준(1904-1967), '선부고독(善夫孤獨)', 1939년(36세), 삽화, '문장'(1939년 7월) '임시증간 창작 32인집'

동아시아에서 초상화는 국가의 또는 가족이나 집단의 기념과 의례를 위한 사회적 기록물이어서 자화상의 전통이 미미했다. 서양미술사에서는 르네상스 때부터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그려 많은 대가들이 자화상을 남겼다. 자화상은 화가의 자기 객관화이자 자아와 세계 사이의 관계성이 드러나는 그림이다.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운 근원 김용준의 1930년 유화 자화상이 남아있고 동양화로 전향한 후에도 종종 자화상을 그렸다.

'선부고독'은 '근원수필'(1948년)에도 실린 스케치 풍 자화상이다. 쌍둥이처럼 보이는 양복 차림의 두 남성이 풀밭에 같은 자세로 나란히 앉아 있다. 중절모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두 팔로 무릎을 감쌌다. 이 둘은 같은 김용준이다! 나를 알아줄 사람이 나밖에 없어 또 하나의 나를 그려 친구로 삼는 고독한 김용준. 기발한 자화상이고 쓰라린 자화상이다. 왜색(倭色)과 양풍(洋風)이 휘몰아치는 1930년대 전환기의 시공에서 우리 미술의 가치와 의미를 자각한 김용준은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제목인 '선부고독'의 선부(善夫)는 경북 선산 출신인 김용준의 자(字)다. 자를 호처럼 활용하며 자신이 사실은 선부가 아니라 불선부(不善夫)인 악부(惡夫)이기 때문에 이를 반전시키는 뜻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호를 짓는 장난도 일종의 풍류"라며 하나하나의 호에 깊은 사색을 담았다.

인장은 '우산(牛山)'이다. 우산 호는 "선가(禪家)에서 애송하는 '심우송(尋牛頌)'이 하도 좋아서" 지었다. 아무리 여러모로 생각해 보아도 "소란 놈이 오죽 좋으냐" 싶어서였다. 이중섭의 슬픈 '황소'가 떠오른다. 우(牛)는 소의 머리모양을 음각으로, 산(山)은 전서를 양각으로 새겼다. '우산'은 모든 인장이 그렇듯 작품 속의 작품인 전각예술이다. 상형문자인 한자의 이미지성을 살린 초형인(肖形印)이자 음각과 양각을 섞은 주백상간인(朱白相間印)이며 두 글자를 띄워 새긴 연주인(聯珠印)이라 마치 초소형의 미니 그림 같다.

이길 수 없는 길을 스스로 선택한 고독한 김용준은 김정희를 사숙하며 이렇게 호에, 전각에 몰입했다. 김용준의 자화상, 김용준의 호에는 서세동점의 압도적 외세에 짓눌리며 자존을 열망한 근대기 지식인의 고뇌가 묻어있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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