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박정현] 표준화의 함정 '뎁스(DEPTH)'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박정현 전교조 대구지부 중등정책국장
박정현 전교조 대구지부 중등정책국장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각 교육청에서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서·논술형 평가를 정기시험에서 20% 이상 포함하도록 하는 지침을 10년 전부터 하고 있다. 나아가 올해 10월부터 대구형 서술·논술·구술형 평가 플랫폼 '뎁스(DEPTH)'를 개통한다. 뎁스는 강은희 교육감 취임 이후 강하게 밀어붙인 국제 바칼로레아(IB)의 평가 방식을 벤치마킹하여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평가 시스템이다.

IB는 채점의 전문성을 앞세운다. 채점관 자격을 부여하는 IB의 채점 방식이 '신뢰성'이 높아 보이고 전문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오히려 인증된 채점관에게 현장 교사의 수업과 평가가 종속되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제주 IB 학교 수업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를 읽고 시와 관련된 글로벌 이슈를 찾아봐라"라는 과제가 제시됐다. 학생들은 IB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정체성'을 들어 진달래꽃의 화자를 "남성 차별적인 가부장적 유교 문화"의 희생자로, 시를 '미투(MeToo)'라는 글로벌 이슈와 연결한다. 이는 <진달래꽃>을 IB 교육과정으로 오역하며 피상적으로 읽어버린 결과다. '글로벌 이슈'라는 있어 보이는 단어로 <진달래꽃>을 비평했다고 생각하겠지만 한(恨)의 정서, 이별의 미학, 역설적 언어의 정수로 꼽히는 이 시를 완전히 잘못 읽은 사례다.

국가교육과정이 있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똑같은 수업과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역, 학교, 학년, 학생의 특성을 파악한 교사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수업과 평가를 운영한다. 모든 것을 표준화하지 않는다.

뎁스로 학교의 서·논술형 평가를 표준화한다면 <진달래꽃>을 '미투'로 읽는 일이 벌어진다. 뎁스는 책임채점관과 선임채점관이 현장의 채점을 관리하는데 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교사의 수업과 평가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현장의 채점관(학교 일반 교사)은 '책임채점관'과 '선임채점관' 같이 채점하라고 요구받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책임채점관과 선임채점관이 학교 교사의 수업과 평가에 관여하면 할수록 현장과의 갈등이 불거질 테다. IB처럼 책임채점관과 선임채점관의 '모범 채점 답안'을 주어 교사를 평가의 주체가 아닌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바라볼 게 뻔하다.

주체적 학생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교사가 주체적이어야 한다. 뎁스는 교사의 평가 전문성을 길러준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졌겠지만 오히려 대구시교육청이 설계해 놓은 경로를 잘 따라오는 '팔로워'적 교사를 양산한다. 대구교육청은 국교위의 서·논술형 평가 도입에 따른 논란을 보며 선제적 대응을 하고 싶었겠지만, 논란 속에서 평가의 본령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서·논술형 평가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채점을 공정하고 신뢰성 있게 하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평가는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피드백 역할을 한다. 교사에게는 공정성과 신뢰성보다 오롯이 학생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평가의 자율성이 필요하다. 평가의 자율성, 온전한 평가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떤 시스템이 도입되더라도 학생의 성장보다는 변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뿐이다. 결국 뎁스도 또 하나의 변별 도구로, 교육 서열화를 더 정교하게 하는 장치로 쓰이지 않을지 걱정이다.

박정현 전교조 대구지부 중등정책국장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프랑스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뤼미에르 서밋'에서 영화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한미 양국은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의 첫 번째 사업으로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처음 운영된 청소년 사이버도박 자진신고 기간 동안 1,777명이 도박 사실을 신고했으며, 평균 나이는 15.5세로, 일부 고등학생은...
아메리칸항공 618편에서 기내 난동을 부린 67세의 미국 부동산 중개인 아서 레인 룬딘이 승객과 승무원들에 의해 제압되어 비행기가 볼티모어로..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