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다가 십여 년 전 가르쳤던 제자 A를 우연히 보았다. 유명 캐릭터와 함께 대구의 명소를 소개하는 시민으로 출연한 A는 낯선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유창하게 풀어냈다. 성인이 된 얼굴에는 중학생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자신감 넘치는 말투는 내가 기억하던 A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교실에서 생긴 작은 오해
A와의 인연은 십여 년 전 한 중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커다란 눈을 가진 A는 국어 수업 시간마다 나를 당황하게 했다. 수업 시간에 아무것도 적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고, 활동 방법을 다시 설명해 주어도 대답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모둠 활동이나 발표 시간에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따로 불러 대화를 시도하면 겨우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짧게 대답한 뒤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곤 했다.
당시의 나는 A가 수업에 관심이 없거나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을 지나치게 어려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A의 담임 교사와 교과 교사들이 모여 학생들의 배움에 대해 협의하는 자리에서 A의 영어 성적이 매우 우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알고 보니 A는 부모 중 한 분이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가정에서 자랐으며, 주 양육자가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한국어가 서툰 학생이었다.
그제야 A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A는 수업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한국어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내가 침묵이라고만 생각했던 모습은 낯선 언어와 환경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일찍 A의 상황을 알았더라면 말 대신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게 할 수도 있었고, A가 잘하는 영어를 수업에 활용해 자신감을 얻도록 도울 수도 있었다.
◆다름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
중학교에도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들을 일컫는 말도 '다문화 학생'에서 '이주배경 학생'으로 바뀌었다. 이주배경 학생에는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뿐 아니라 중도입국 자녀와 외국인 가정의 자녀 등이 포함된다.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도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있다.
이주배경 학생의 개인정보는 교육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공유된다. 특히 학생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정보는 국어 수업에 있어 개별 지도의 방향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학생은 자신이 이주배경 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배경에는 이주배경 학생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이 자리하고 있다. 일부 청소년은 자신과 다른 외모나 말투, 생활환경을 가진 친구를 호기심이나 놀림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처음부터 '다름'을 '차별'의 근거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주변 어른들의 말과 태도를 보며 무엇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낯설거나 이상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배운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자주 접하는 매체의 영향도 꽤 크다.
부모가 다른 나라의 언어나 외모를 신기한 구경거리처럼 이야기하거나 무심코 편견이 담긴 말을 사용하면 자녀도 그러한 시선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반대로 서로 다른 문화와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아이 역시 친구의 배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외모와 출신에 먼저 관심을 두기보다 그 친구의 성격과 관심사, 함께한 경험을 통해 한 사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두에게 필요한 시민교육
이주배경 학생을 도움이 필요한 학생으로 바라보는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A는 한국어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영어에서는 또래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가지 어려움만으로 학생의 능력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주배경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하기에 앞서 각자의 관심과 강점, 가능성을 가진 사회의 구성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방송 속 A는 자신의 목소리로 당당하게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어쩌면 A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언어와 환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는 이미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삶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다. 이주배경 학생과 이주민에 대한 이해 교육은 일부 학생을 돕기 위한 특별한 교육이 아니라 모든 아이에게 필요한 시민교육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설명보다 어른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부모가 보여 주는 존중의 시선은 자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된다. 그리고 그 시선은 누군가를 침묵하게 만드는 벽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도록 돕는 힘이 될 것이다.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연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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