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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핫플레이스] '지평선의 도시' 전북 김제 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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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의 바람과 노을을 품은 길, 새만금 바람길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길, 모악산 마실길
숲 향기 따라 마음 쉬어가는 길, 금구 명품길
끝없는 지평선 위로 감성이 흐르는 들녘길

모악산 마실길의 하이라이트 금산사. 백제 법왕 원년에 창건돼 1400년 역사를 간직한 미륵신앙의 원천이자 성지이다.
모악산 마실길의 하이라이트 금산사. 백제 법왕 원년에 창건돼 1400년 역사를 간직한 미륵신앙의 원천이자 성지이다.

끝없이 펼쳐진 들녘 사이로 바람이 흐르고 낮은 산자락 아래 오래된 시간이 조용히 머무는 곳. 예로부터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로 불리는 '지평선의 도시'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의 길은 자연과 역사,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이어진다.

어느 길은 푸른 바다를 따라 걷게 하고 어느 길은 천년고찰의 고즈넉함 속으로 이끈다. 또 어떤 길은 숲의 향기로 마음을 쉬게 하고 어떤 길은 끝없는 지평선 위로 삶의 여유를 건넨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여행이 아니라 천천히 머물며 풍경을 느끼는 '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곳, 그것이 바로 김제 길 여행의 매력이다.

봄이면 연둣빛 들녘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번지고 여름이면 짙어진 녹음 사이로 숲 향기가 가득 스민다. 가을에는 황금빛 들녘이 끝없이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겨울에는 고요한 저수지와 산사가 또 다른 정취를 선물한다. 사계절 내내 다른 얼굴로 여행자를 반기는 것이 바로 김제 길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다.

◆서해의 바람과 노을을 품은 길, 새만금 바람길

김제 진봉면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새만금 바람길은 이름 그대로 바람이 길을 안내하는 곳이다. 진봉면사무소를 지나 방조제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면 서해의 짭조름한 바람이 먼저 여행자를 맞이한다. 바다와 들판, 낮은 산세가 함께 어우러진 풍경은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김제만의 풍경이다. 만경강 하구와 서해, 그리고 광활한 간척지가 함께 어우러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철새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사이로는 서해 특유의 고즈넉함이 전해진다.

길은 전선포 방향으로 이어진다. 고려 후기 왜구와 맞서 싸우던 군항이었던 전선포는 지금은 포구의 흔적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강 하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긴 세월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밀려온다.

전선포 주변으로 펼쳐진 진봉반도의 풍경 또한 인상적이다. 봉화산과 진봉산, 국사봉 능선이 옛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고 그 아래로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다. 예전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공간이 지금은 드넓은 농경지로 바뀌어 있는 모습은 김제의 간척 역사를 보여준다.

백제 의자왕 때 창건된 천년고찰인 망해사. 예로부터 서해 낙조의 절경으로 유명하다.
백제 의자왕 때 창건된 천년고찰인 망해사. 예로부터 서해 낙조의 절경으로 유명하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서해를 굽어보는 망해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백제 의자왕 때 창건된 천년고찰인 망해사는 진봉산 기슭 괴석 위에 자리해 서해와 만경강 하구, 그리고 고군산군도의 풍경을 한눈에 품고 있다.

이름 그대로 '바다를 바라보는 절'이라는 뜻을 지닌 망해사는 예로부터 서해 낙조의 절경으로 이름난 곳으로 이상 문학상 등단작품에 등장할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 지난 2024년에 망해사는 자연과 역사,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자연유산 명승으로 지정되며 그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망해사에 올라 서해로 저무는 붉은 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왜 예로부터 이곳이 '낙조 명소'로 불렸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오래된 팽나무 아래로 스며드는 바람과 서해의 붉은 노을, 그리고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산사의 고요함은 새만금 바람길 가운데 가장 깊고도 아름다운 순간을 선물한다.

망해사를 지나 심포항으로 이어지는 길은 새만금 바람길 가운데 가장 서정적인 풍경을 선물한다. 한때 백합과 각종 조개류의 집산지로 번성했던 심포항은 지금도 서해의 낭만을 품고 있는 포구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귀신사. 양귀자의 소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귀신사.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의 무대로 유명하다.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길, 모악산 마실길

모악산은 오래전부터 호남의 명산으로 사랑받아 왔다. 산 아래 거대한 바위가 아이를 안은 어머니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모악'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 산에서 위로와 안식을 얻었다.

길은 어느새 귀신사를 향해 유유히 뻗어간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이 작은 절은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의 무대로 유명하며 화려하지 않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깊은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다. 대적광전과 오래된 삼층석탑, 숲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만든다.

길의 끝자락에서 만나게 되는 금산사는 모악산 마실길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 백제 법왕 원년에 창건된 금산사는 1천400년 역사를 간직한 미륵신앙의 원천이자 성지이다.

모악산 일대에는 함께 둘러보기 좋은 공간들도 자리하고 있다. 한옥과 서양식 교회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금산교회는 한국 전통사회의 남녀 구분 문제를 'ㄱ'자형 건물로 풀어냈다. 전주시 전동 본당과 더불어 전라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수류성당은 영화 '보리울의 여름'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한옥과 서양식 교회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금산교회.
한옥과 서양식 교회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금산교회.

◆숲 향기 따라 마음 쉬어가는 길, 금구 명품길

자연 생태와 농촌 풍경이 조화를 이루는 금구 명품길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머물고 싶은 풍경으로 가득하다. 도시 소음 대신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리고 빠른 걸음보다 천천히 걷는 발걸음이 더 잘 어울리는 길이다.

걷다 보면 어느새 선암저수지 풍경 앞에 서게 된다. 구성산 계곡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사계절 내내 풍요로운 풍경을 만들고 잔잔한 수면 위로 하늘과 산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물가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새 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조용히 곁을 채운다. 이어지는 길 끝에는 선암자연휴양림이 자리하고 있다. 숲속의 집과 산책로, 야영장이 마련된 이곳은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공간이다.

금구 명품길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편백나무 숲이다. 빽빽하게 들어선 편백나무 숲 사이를 걷다 보면 피톤치드 향이 가득 스며든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고 숲 향기가 깊게 번지는 순간, 걷는 것만으로도 치유받는 기분이 든다.

금구 명품길의 가장 큰 매력인 편백나무 숲. 빽빽하게 들어선 편백나무 숲 사이를 걷다 보면 피톤치드 향이 가득 스며든다.
금구 명품길의 가장 큰 매력인 편백나무 숲. 빽빽하게 들어선 편백나무 숲 사이를 걷다 보면 피톤치드 향이 가득 스며든다.

◆끝없는 지평선 위로 감성이 흐르는 길, 지평선 들녘길

김제를 대표하는 풍경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길은 단연 지평선 들녘길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김제평야 위로 계절의 색이 흐르고 바람은 논과 밭 사이를 유유히 지나간다. 특히 가을이면 황금빛 논길이 끝없이 이어지며 장관을 이룬다. 수확을 앞둔 들녘 사이로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금빛 물결이 출렁이고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바다가 흐르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길 위에서 처음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곳은 벽골제다.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수리시설로 유명한 벽골제는 김제 농경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다. 오래된 제방과 수문, 그리고 드넓은 들녘 풍경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삶의 흔적을 보여준다.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과 아리랑문학관, 벽천미술관 등 다양한 문화공간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 걷는 재미를 더한다.

또한, 벽골제 일원에서 매년 10월 김제지평선축제가 열려 전국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다. 축제장 주변으로 길게 이어진 코스모스 길은 바람 따라 일렁이는 꽃물결로 장관을 이루고 황금빛 들녘과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가을 그림 같다.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수리시설 벽골제에 설치된 쌍용 조형물.
우리나라 최대의 고대 수리시설 벽골제에 설치된 쌍용 조형물.

길은 다시 아리랑문학마을로 이어진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속 공간을 재현한 이곳에는 일제강점기의 아픔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래된 초가집과 골목길, 그리고 마을 중앙의 당산나무 아래를 걷다 보면 마치 소설 속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듯한 감성이 전해진다. 아이들과 함께 우리 역사를 돌아보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은 장소다.

천천히 걸을수록 더 많은 풍경이 보이고 오래 머물수록 더 깊은 이야기가 들리는 곳. 걷는 길마다 추억이 되고 머무는 순간마다 쉼이 되는 곳. 김제의 길은 오늘도 바람 따라 여행자들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전북일보 강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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