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주도적으로 세계에 보급해 온 태권도를 북한이 먼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단독 등재할 가능성이 커졌다.
K팝과 K드라마를 비롯한 한류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무예인 태권도의 유네스코 등재에서 북한이 한발 앞서게 된 것이다.
유네스코 등재가 태권도의 종주국 지위를 결정하거나 특정 국가에 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태권도의 역사와 전승 문화를 알릴 기회를 북한이 먼저 확보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문화유산 등재 전략에 아쉬움이 남는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북한 태권도 올해 등재 유력…한국은?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2일 오전 11시쯤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이 신청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통무술-태권도'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평가기구로부터 '등재 권고' 판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평가기구의 등재 권고는 최종 결정은 아니지만 실제 등재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은 2024년 3월 태권도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한국은 올해 3월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를 신청했다.
북한의 등재 여부는 오는 11월 30일부터 12월 5일까지 중국 샤먼에서 열리는 제21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결정된다.
반면 한국이 제출한 '태권도: 한국의 도장 공동체 수련문화'는 2028년 12월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북한의 등재가 올해 확정되면 한국보다 2년 먼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셈이다.
◆남북 공동등재 사실상 무산…2018년 씨름의 재현 어려워
정부는 당초 남북 공동등재를 추진했으나 현재로서는 성사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허민 청장은 "당면한 남북 관계 등 여러 여건으로 인해 현시점에서 공동등재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남북이 함께 무형문화유산을 등재한 전례는 있다. 2018년 유네스코에 공동등재된 '씨름'이다. 당시 남북은 각각 씨름 등재를 추진했으나 유네스코의 중재와 양측의 협력을 통해 공동등재에 성공했다. 분단 상황에서도 공유하는 문화유산을 함께 보존할 수 있다는 상징적 성과였다.
그러나 태권도에서는 이 같은 협력이 재현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의 2024년 단독 신청 이후 한국 정부가 공동등재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검토했지만, 남북 관계의 경색 속에 양측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태권도 세계화 이끈 한국…유네스코에서는 북한에 선점 허용?
이번 사안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태권도의 국제적 위상과 유네스코 등재 추진 상황 사이의 간극이다.
태권도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이자 문화 콘텐츠다. 세계태권도연맹(WT)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 보급됐으며,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올림픽 정식 메달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곳곳에 태권도장이 운영되고, 한국의 태권도 시범단과 문화교류 사업도 태권도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국제태권도연맹(ITF) 계열을 중심으로 별도의 태권도 전승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두 계열은 경기 규칙과 수련 방식 등에 차이가 있지만 모두 태권도의 역사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북한이 유네스코에 먼저 등재된다고 한국의 태권도 종주국 지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 태권도의 국제적 지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국제사회에 태권도의 역사와 전승 문화를 설명할 때 북한의 등재 자료가 한국보다 먼저 유네스코 공식 목록에 수록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태권도의 보급과 대중화를 주도해 온 현실을 고려하면 문화유산 등재에서도 더욱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북한 신청 2년 뒤 한국도 신청…문화유산 외교의 과제
특히 등재 추진 과정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2024년 태권도 단독등재를 신청한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국가유산청은 정부 차원에서 남북 공동등재를 추진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후 관련 단체와 협의를 거쳐 남북 공동등재 가능성을 검토했으며, 올해 1월 태권도를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하고 3월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 사이 북한의 신청은 심사 단계로 진입했고, 한국의 신청은 2028년을 바라보게 됐다.
남북 공동등재가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이 더 일찍 독자적인 등재를 준비할 수는 없었는지, 공동등재에 무게를 두는 과정에서 대응이 늦어진 것은 아닌지 검토할 대목이다.
허민 청장은 북한이 먼저 등재되더라도 배타적 권리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의 태권도가 기존 목록에 추가되는 '확장 등재'나 별도의 '단독 등재'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제로 유네스코에는 남북이 서로 다른 시기에 각각 등재한 아리랑과 김장 문화의 선례도 있다. 따라서 북한의 선등재가 한국의 향후 등재를 가로막는 것은 아니다.
다만 K팝과 K드라마 등 한국 문화의 국제적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표적인 K문화 자산인 태권도의 유네스코 등재를 북한이 먼저 추진해 성과를 앞둔 현실은 문화유산 외교의 전략과 준비 과정을 돌아보게 한다.
한편, 한국이 올해 등재를 추진하는 '한지 제작의 전통 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도 평가기구로부터 등재 권고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 등재되면 한국의 24번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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