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칼럼-지금은 피의 시대

일주일에 한번 꼴로 찾아가는 산은 언제나 싱그럽다. 산행시각이 형편에 따라 들쭉날쭉이지만 시간과 관계없이 항상 즐겁다. 산은 잠자듯 누워 있지만실은 눈뜨고 깨어 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숨쉬고 넓은 품속에 네발짐승과날짐승을 키운다. 온갖 초목들 사이에 길짐승과 풀벌레들을 길러 일년을 사철이게 한다.7월의 산은 더욱 아름답다. 장마의 전령으로 미리 내린 비가 산개울을 타고흘러가면서 나부끼는 깃발처럼 소리를 지른다. 물기머금은 잎사귀들은 한결건강하다. 갓 피어나는 연초록 잎새는 꽃의 붉음보다 아름답다. 신선함이 화려함을 앞지르는 이유가 여기있다.

이제 우리사회도 새살이 돋으려 한다. 산숲에서 느낄 수 있는 맑은 기운이하루빨리 우리주변에서 풋풋하게 감돌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의 의지-대통령이란 자리에 앉자마자 사정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 김영삼대통령은 엊그제 공직자대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위로부터의 개혁이 전공직자사회에 확산되어 모든 공직자가 자정과 의식개혁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최근 비리척결 활동의 여파로 일부 공직자들이 무사안일한 자세로 움츠러들고 있다고 한다. 소신도 없고 자부심도없는 공무원들은 공직을 떠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백번 천번 맞는 말이다.요즘 공무원들은 일을 벌이려 하지않고 하던일도 덮어두려 한다. 사정의 칼날앞에 쓰러지는 거목들을 보며 저칼이 언제 나의 목에 떨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문민시대이전에는 일은 곧 돈이었다.

돈이 생기는 일은 몸이 상하더라도 해냈다. 지금은 돈이 생기는 일은 목이날아갈까 싶어 피한다. 돈이 생기지 않는 일은 아예 관심밖이다. 그래서 관청일은 안되는 일이 없는듯한데 되는 일이 없다.

구청에서 위생업무를 보고있는 어느 공무원은 [단속을 나가도 돈주는 업주가없고, 설사 준다해도 투서질때문에 받을수도 없고| 단속이 개판이지요]라고설명하면서 사정기간이 여름장마처럼 지루한것을 내심 원망하는 눈치였다.사고의 경직성 여전-무슨 허가를 받기위해 관청의 민원실에 가본 사람이면누구나 느낄수 있는 현상이 하나있다. {종전보다는 친절해졌지만 도대체 무엇이 성사되지는 않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공무원들은 법과 조례 그리고 규칙에 너무나 꽁꽁 얽매여 있다. 융통성을 좀처럼 발휘하지 않는다.예를 들어보자. 제주도의 어느 병원장이 꽃사슴 5마리를 자연속에서 마음껏뛰어놀도록 탐라교육원입구에서 풀어 주었다. 수사슴1마리에 암놈4마리로5년뒤엔 1백마리로 늘어날것이라 했다. 이에 동조하여 서귀포의 어느 스님도꽃사슴 한쌍을 방목하겠다고 나섰다. 이러한 귀한 뜻은 구름한점 없는 그곳,한라산에 꽃사슴을 뛰놀게 하는 누가 들어도 감동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제주국립공원관리사무소의 공무원들은 [공원구역밖에 방사해 당장 어떤 조치를취할수는 없지만 꽃사슴이 공원안으로 들어와 자연생태계를 파괴할 경우에는법에 따라 방사한 병원장과 스님을 처벌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이같은 제주도 공무원의 경직된 사고방식이 우리나라 전체공무원들의 생각속에 막연하게나마 잠재되어 있을것만 같아 불안한 마음을 지울수가 없었다.공직기강이 국가기강-이번 사정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공무원들이 얼마나 많은 비리를 저질러 왔는지를 똑똑히 보았다. 교육부 공무원은 답안지를 팔아 돈을 챙겼고, 장군들은 별을 팔았고, 해군장교는 국가기밀을, 보사부 공무원은 시행규칙을 삭제하여 온갖 난리를 치르게 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움직이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일하지 않고 일신의 보신을 위해 웅크리기만 한 무사안일의 공무원이 무더기로 양산되는 것도 볼 수있었다.

탱고춤은 둘이서 추듯 부정과 비리도 둘이서 저지른다. 그래서 언젠가 들통이 난다.그러나 무사안일은 혼자서 저지르는 무서운 죄악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내부의 적을 섬멸하는 일이다. 나자신을 향해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을겨누고 {하루를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고 물어봐야 한다.산에는 소신없이 피어있는 풀꽃은 하나도 없다. 능선에 서있는 소나무들도자부심하나로 하늘을 지키고 있다. 지금 이 시대는 {왜 사냐건 웃지요}하고받아넘기는 낭만시대가 아니다. 바야흐로 피를 흘려야 하는 피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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