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배추에 관한 단상

민간에서 재배된 채소가 본격적인 상품으로 시장의 유통구조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887년의 일로 전해진다. 당시 왕시와 강시라는 중국의 두 산동인이인천으로 이주해 경기도 부천군에서 채소재배를 시작하면서 부터다. 또 다른일설에는 이들 두사람이 산동생과 인천을 내왕하는 정크선의 선원을 통해 산동성의 연대로부터 채소씨앗을 수입해서 재배하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당시인천지역을 중심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던 이들 양배추를 비롯한 야채류들은경성, 부산, 대구, 평양은 물론이고 중국의 청도와 일본에까지 공급지역을 넓혀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인이 쓴 {신조선급신만주}라는 저서에는 {화교들의 농업중에서 이채를 띠고 있는 것은 채소의 재배법이다. 그들은 전포의일우에 작은 누옥을 짓고 일의전심으로 그 재배에 힘쓰고 있다. 그 방법은교묘하기 짝이 없으며 생산액은 적지않다. 생산품의 판매에도 재치가 있어 채소재배의 이익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포기당 50원보상 이들은 채소류 판매에는 청채농간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교묘해서 채소가 풍작이 되면 이를 밭에서 뽑지않고 값을 올리는 농간도 서슴지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오늘날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는 이른바 배추파동은 개화기에 있었던 청인들의 농간과는 거리가 멀다. 값을 올리기 위해서 밭에서 배추를 뽑지않는 것이 아니라 한 포기당 50원이라는 보상금을 받기위해 그대로 폐기를 시켜야 한다니 내막이야 어찌되었던 아연할수 밖에 없다. 그 보상금이 50원이아니라 5백원이라 할지라도 재배한 배추를 추수하지 말고 밭에서 그대로 썩히라는 정부의 권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농민들에겐 형벌로 가름된다.원초적 성취감뺏아 물리적인 것이든 심정적인 것이든 노동의 대가는 바로 성취감이다. 산을 깎아 대지를 만들었으면 그곳에다 건물을 짓고 많든적든 건물지은 값을 손에 넣어야만 건설업자의 성취감이 있게되고 언땅을 갈아 씨앗을뿌려 배추를 재배했다면 그것을 추수해서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출하하고 나서야 농민은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죄수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형벌은 구덩이를 팠다가 그 흙으로 구덩이를 다시 메우고 다시 파선 또 다시 메우는 일을 반복시키는 노역이라는 말을 들었다. 구덩이를 팠으면 그곳에다 뭘묻든지 아니면 기둥을 박든지 해야 할 터인데, 다시 메우라는 것은 그 죄수에게 성취감을 맛보이지 않으려는 것이고 그런 단조로운 노역의 끊임없는 반복을 드디어 한 인간으로 하여금 인내심의 한계에까지 몰고가서 종말에 이르러선 인간성의 파괴에까지 도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의 농민들이 겪고 있는 이 배추파동은 그런 형벌로 지칭되리만큼 극단적인 것은 아니라할지라도 그들이 감내해야할 심정적인 고통은 그런 논리의 바탕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부신벽}허무는 길부터 이런 불상사가 발생된 근본적인 원인은 한마디로 말해서 상호불신의 벽이너무나 두꺼운 때문일 것이다. 우선 농민들이 정부의 농정을 믿지않고있는 것이다. 농림수산부에서는 지난 8월초 전국농가에 배추재배면적을 당초 계획보다 20% 정도로 줄여 심도록 당부했다 한다. 그러나 농민들의 배추파종면적은 당초계획보다 오히려 20%를 늘렸다는 것이다. 정부의 말대로 농민들이 생산량을 줄여 적정가격을 유지해 놓고보면 결국은 그해에 정부의 권유를 듣지않고 많이 생산한 사람만 이익을 보았더라는 전례는 우리의 농정사에 수없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정부가 과잉생산에 대한 피해보상을 일삼게 된다면 그 또한 농작물생산의 혼란이 초래될 것도 불을 보듯 역력하다. 임기응변이나 그때마다 구멍을 막아주는 농정보다 더욱 다급하고 더욱 근본적인대비책은 정부와 농민들간에 팽배해있는 그 불신의 벽을 허무는 길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야할 때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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