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는 교문이 동서남북 4군데가 뚫려있다.그중에 북쪽문의 규모가 가장 크다. 말하자면 집안의 큰대문인 셈이다.이 북문이 세워진건 1979년 무렵이다. 그 이전에는 신암동쪽 남문과 경북도청쪽 서문으로 주로 출입했는데 수십년간 사용해오던 남.서문을 두고 굳이 새로 담을 헐고 북쪽으로 대문을 낸데는 믿기잖은 숨은 사연이 있다.1979년부터 81년사이 경북대 총장으로 재임했던 S총장은 법학을 전공했으면서도 불교철학에 심취해 불교에 관해서는 상당한 경지에 닿아 있었고 실제 불교재단인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던 분이었다.
그런 연유로 S총장은 한국에서 내로라 하는 이름난 고승들과의 교분이 넓었다. 총장부임후 인사치레겸 고승 한분을 경대로 초빙했다. S총장의 의도가 깔려 있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그날 초빙된 고승은 고명한 스님들중에서도 특히풍수지리에 통달한 스님이었다.
캠퍼스를 한바퀴 둘러보인후 총장실에 대좌하자마자 S총장이 입을 뗐다.[스님, 둘러보시니 앞으로 경대에 큰 인물이 계속 많이 나오겠습니까?]고승이 한참동안 묵묵히 있다가 대답했다.
[복현땅이 팔공산 정기를 받으면 더 생기가 있을것 같습니다만[그럼 북쪽으로 교문을 낼까요?]
고승이 돌아간뒤 얼마 안있어 특별예산을 만들어 세워진 것이 바로 지금의경대 북문이다.
당시 북문 양쪽 돌기둥위에는 고대의 호랑이, 영대의 천마처럼 경북대학교를상징하는 돌조각을 세워 얹으려 했으나 S총장의 퇴임과 함께 흐지부지되는바람에 지금도 맨돌기둥만 세워져 있고 경북대학교의 상징은 정해지지 않고있다.
향토 국립대학의 교문이야기를 장황하게 꺼낸것은 어저께 어느 언론기관이전국 131개 대학의 학생 교육비 및 재정운용을 평가한 결과 경북대학이 학생교육비투자등에서 50위권 밖으로 처져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서다.S총장이 고승까지 모셔다 북쪽으로 교문을 낸것은 향토대학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나고 대학이 융성, 발전하기를 바라는 교육자이자 불교철학가로서의애착심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실제 북문을 뚫고 난뒤 큰 인재가 많이 나고 졸업생이 북문내기전보다 더 많이 {출세}했는지는 딱부러진 조사나 통계는 없다.
지금 경대동문 국회의원은 전국구의원 1명을 빼면 단 두명뿐이다.93년 동창회인명록에 의하면 현직 장관은 한명도 없다.
지방의회 의원 17명, 시군구의회 의원 30명,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다.
그러나 북문개통후 79년에서 81년 2년사이 사법시험 합격자는 무려 27명 정도로 북문 이전에 비해 괄목할만한 합격률을 보였다.
인맥.학맥등 정치입김이 센 관계나 정계를 제외하면 79년이후 학계에서의 두드러진 활동도 상당하다.
대구.경북지역 대학의 교수중 1천5백여명이 경북대 동문들이며 의료계 역시아직은 경북대의대의 전통과 권위가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그런 것들이 다 북문 덕이라는 낭만적인 풀이나 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지금, 또 앞으로의 지역 국립대학의 비전이 어둡다는 점이다.왜 지역명문대학이 가장 중요한 교육비 투자에서 50위 밑으로 추락했는가.타지역 대학들은 학교 발전기금이란 것도 잘도 모금되는데 대구는 말로만 교육도시를 자랑하면서 인색한가. 향토대학은 껍질만 남아가는데도 먹거리식당.여관.사우나만은 전국 최고로 만들어서 뭘 어쩌자는 것일까.대문만 북쪽으로 내놓고 팔짱끼고 앉아 있으면 저절로 인재가 나타나고 동량이 될 수는 없다.
북문론은 교육비 투자도 알차게 하고 교육시설도 다른 학교 뒤지지 않게 다져가면서 내일에 쓰일 지역인재를 열심히 잘 길러내자는 교육열과 열성의 한표현이었을 뿐이다.
더 늦기전에 경대뿐아니라 향토 대학들의 발전을 위한 애정과 정성을 모아보자하. 답답해서 북문도 내보던 그 애향.애교심을 되새겨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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