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살겠다 못살겠다. 밥만 먹곤 못살겠다' 농촌 총각들의 결혼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 된 일이다. 어지간한 처녀들은 죄다스무살도 채 되기 전에 도회로 다 떠나서 남아있는 처녀는 눈을 씻고도 찾기어려우니 '님을 봐야 뽕을 딴다고' 사람이라도 봐야 연애고 뭐고 할 것 아니냐는 하소연이다. 가뭄에 콩나듯이 한 둘 남아있는 처녀들도 농촌 총각한테장가들 생각을 않으니 낭패가 아닐 수 없다.농촌에 사는 젊은이들이 공장에 일시적으로 취업, 색시감을 구한 후 귀거래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도시로 몰려든다. 그러나 이것도 바람처럼 쉬운 일이아니다. 김모씨(36·대구시 서구 비산동)는 "아내가 촌에 내려가면 같이 안살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이러지도 못하고 그대로 눌러지낸 것이 벌써 5년을넘겼다"고 한숨지었다. 위장결혼한 신부가 도망가 혼수만 날리고 사기에 가슴태우는 농촌총각이 한 둘이 아니고 최근 몇년 동안엔 아예 자살까지 하는비극까지 벌어져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런 사정이니 아무리 농자천하지대본(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주워섬겨봤자젊은이들이 농촌에 제대로 남아있을 턱이 없다. "그래도 상여 메줄 사람 남아 있을 때 죽는 것이 팔자가 편하다고 할 수 있지요"한 촌부의 체념섞인 말이다. 웬만한 농촌 지역에서는 상여멜 사람이 없어 50~60대까지 나서고 있으며 일부 마을에서는 도시를 떠난 사람들이 상여계까지 만들어 제대로 상례라도 치르려는 지경에 이른 세태가 되고 만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경제 개발 정책이 본격화된 70년대 이후 이농이 늘기 시작, 80년대 이후에는 해마다 40만~50만명 이상이 대거 도시로 빠져나갔다. 지난 69년1천5백60만명에 이른 농가 인구는 그후 계속 줄기 시작해 지난 91년에는 6백만명(농림수산부, 농림수산통계)까지 내려갔으며 94년 현재 근근이 5백만명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 70년 경우만 해도 농촌 인구가 1천4백42만명으로우리나라 총인구의 45%에 이르렀으나 94년엔 10%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만 봐도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농촌의 황폐상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마을, 40대가 최연소자인 마을, 이것이 오늘의 농촌 실상이 됐다.이농문제는 우리나라의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필연적인 추세라 할 수도 있지만 정부의 비교우위에 의한 농업 경시 정책도 크게 한 몫을 한 것으로 지적된다. 현재 재벌 그룹은 산하 무역 종합상사를 통해 닥치는대로 무분별하게 외국 농산물을 수입해다가 국내에 유통시켜 막대한 이득을 남기고 있다.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도는 30%를 조금 넘는 실정에 불과하다. 모든 국민의 하루 세끼중 두 끼는 수입 농산물로 채워지고 있다. 지난 91년 정부안으로 확정된 '농어촌 구조개선대책'에 의하면 오는 2001년에는 곡물 자급도가20%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돼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원래 식량이 모자라 남의 나라에서 수입해 먹는 나라는아니었다. 해방 이후인 1949년만 해도 쌀을 비롯한 농산물을 수출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의해 가뜩이나 봇물터진 수입농산물 시장은 앞으로 쌀등 전략적 품목도 전면 개방하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 밀가루, 콩등 미국이 주수입국인 품목을 우리나라 들녘에서 거의 볼 수 없게 된 것은 이미 80년대 초부터다. 90년대 들어서는 중국의 저렴한 농수산물이 무차별적으로 수입돼 시장마다 넘쳐나, 주부들이 올린 식탁에서 우리나라 농수산물을 보기가 오히려어려운 형편이 되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해방후 70년대 초까지 계속됐던 손기계모심기, 물두레, 탈곡, 도리깨질등 농사철의 고통스런 작업들을 깡그리잊고 있으며 이앙기, 경운기, 트렉터등 각종 현대적 농기구에 의해 자동적으로 생산돼 나오는 것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의식에 물든 지 오래 됐다. 해방당시 부르던 모내기노래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 에허루 에허루 상사디야…"등은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로 상징되는 가난으로 변변한 쌀밥 한 그릇제대로 못먹는 시절이었다. 6·25 전쟁이 일어난 50년대 초반 전후만 해도초근목피에 개떡으로 연명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이제 40대 이상세대에겐 보리밥이나 손국수등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밀서리로 입이 까맣게 되던 일은 추억 속에서나 그려볼 수 있게 됐다. 최근엔 푸른평화운동본부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우리 밀 살리기 운동'등이 절박한 느낌으로 다가올 정도로 밀이나 보리의 생산 기반은 허물어져 회복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경북도내 경우 60년대에 보리·밀이 20만 ha이상 재배됐으나 92년에는 1만ha 이하로 줄어들고 현재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시대의 냉엄한 흐름 자체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비록 농경문화가 주는 따사로운 공동체 의식과 인정의 문화등 전통적인 미덕은 되살려야겠지만 '세계화'로 대변되는 오늘의 국가적 입지는 과학기술 문명의 지속적 발전 없이는 세계사적 발전 흐름에서 낙오할 수 밖에 없는 궤도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가슴으로 쓴 경북농정사'라는 책을 낸 박진규씨(경북도 국제통상협력실장)는 "농업 발전을 위해선 국가적인 근본적정책전환이 필요하지만 농민들도 분야별로 전문화·세분화해 기술을 발전시켜 전문가·기업가 정신으로 수출농업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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