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3일후…

우리나라의 문화를 탐구하기 위해 온 외국의 어느 인류학자는 "한국에는 3일전과 3일이후에 대한 시간관념이 없는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아무리큰 사고라도 3일이 지나면 기억에서 희미해져 버리고, 3일후의 일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주일이나 열흘쯤후의 약속에 대해 "열흘후의 약속을 왜 미리 하느냐, 그때가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다시 연락을 하자"라고 하기가 일쑤다. 또 일주일이나 열흘후로 예정될 약속이나 회의는 예정일 하루 이틀전에 다시 확인을 하는 것이 보통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는그것이 예정대로 지켜지는 것인지 어떤지 불안해진다.우리들의 생활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거의 없으며 그때그때의 상황에 적응해가는 패턴이 일반화되어 있는 구석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주어진상황만이 우리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설 경우, 이번에 못타면 정해진 순서에 따라 다음에 오는 버스에 반드시탑승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규칙적으로 와야 할 버스가 결행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옆에 서있던 사람이 새치기를 해버리면 내가 타야할 순서는 또 밀려버린다. 그렇기 때문에기다리던 버스가 왔을 때어떻게 하든 매달려서라도 가야한다. 거기에는 질서나 원칙도 무시되어 버린다.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 거기에 대비하려는 의지도 없어지고 만다. 돈을 모을 수 있는 직위와 권한이 주어졌을 때 앞뒤 가리지 말고 지금어떻게든 돈을 긁어모아야 한다. 내가 지은 이 건물이 장래 나의 소유로 남아있을지 알 수 없으니 잘 지어둘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닐까. 우리들 수첩속에는 3일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는 거의 공백상태이며 3일후의 상황이 어떻게될지 예측할 수 없다. 수첩의 용도는 그저 그때그때 사용하기 위한 전화번호부용인지도 모르겠다.

〈계명대 조교수·일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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