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복50 새지평 열자

광복후 50년의 한국 정치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영욕으로 점철된 한편의 파노라마였다.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열망이 맞부딪쳐 온 격동의 반세기였다.50년간의 성적표는 그렇게 후한 편은 아니다. 두 차례의 군사정변에 의한헌정중단과 제헌국회이후 무려 9번의 헌법 개정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어두운 그림자가 너무 짙게 배어 있는게 사실이다.

실제로 올해 1월초 공보처가 광복 50주년을 맞아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결과에서도 90·2%가 국가 전체가 발전했다고 응답했지만 분야별에서 경제부문이 95·8%인데 비해 정치부문은 가장 낮은 44·5%에 불과했다.어떤 의미에서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지금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고도 볼수 있다. 50여년 동안에 누적된 정치 불신이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이다. 조만간세대 교체의 물결이 서서히 요동을 칠지도 모르겠다.그렇다고 민주주의가 한때의 곡절과 퇴행에도 불구, 질과 양등 총량적측면에서 진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특히 다행스럽게도 80년 중반부터 민주주의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

정치사에 있어 1948년 7월 17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이 제정,공표된 날이기 때문이다. 반만년 역사상 최초로 시민 민주주의의깃발이올려졌다. 외양은 서구식 민주제도였다. 그이후 반세기동안 헌법 1장1조에 명시된 민주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정체'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그러나 겉만 미국식민주주의를 모방했지만 그 속은 권위주의로 채워졌다는비판이다.

해방후 미군정에 뒤이은 이승만대통령은 '건국의 아버지'라는 후대 평판에도 불구 냉전의 거센 흐름속에 편승하면서 '반공'구호에 의지, 왕조적 일인지배형태로 정권을 유지하다가 결국 4·19혁명에 의해 몰락해 버렸다.제2공화국의 민주당 정권의 좌절을 딛고 출범한박정희정권은 절대빈곤의시대상황을 활용, 신속한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통해 정통성을 보완하려했다.개발독재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역간,계층간 격차가 발생하고 이에저항하는세력에 의해 유신체제도 종말을 맞았다.

군부권위주의체제는 전두환정권에 의해계승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급속한 성장과 교육제도의보급으로 두텁게 생겨난 중간층및 중산층들의 민주욕구가 87년 6월 항쟁으로 표출되었다. 이후 국민직접투표에 의해 제6공화국의 노태우정권이 들어섰지만 기본적으로 반민반군성격의 이중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3당 통합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김영삼정권은 분명 앞선 정권과 획을 그었다. 군사정권잔재 청산의 깃발을 들고 사정을 필두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가 추진됐다. 그러나 기존 국가주도세력을 등에 업고 생긴 정권이라는태생적 한계로 인해 개혁이 제약을 받기도 했다. 개혁 도중에 인치와 오만한 개혁, 문민독재라는 악평을 듣기도 했다. 지방선거의 참패이후 여권 내부에서는 지금 개혁진로를 놓고 치열한 내부사상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김정권시대가 국가주도형 정부에서 시민사회형 정부로넘어가는 과도기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현상은 정치분야만의 평가와 국가총체적인 평가가 조금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군사 쿠데타의 스타트를끊었음에도 불구, 박정희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평가가 여타 대통령과 비교해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선진국진입의 기틀을 닦은 대통령으로 인식되고 있는듯하다. 최근 독재자로 낙인찍혔던 이승만대통령의건국에 대한 평가가 재시도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이승만,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정권으로 연결되는 '역사의 단절이 없다'는최근의 새로운 시각과도 관련이 있다.

한편 우리의 정치사는 결국 정당사로 요약된다. 주요정당들은 시대별로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했다. 여당은권력 창출자와 운명을 같이했고 야당은 탄압과 저항속에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다. 김광식 21세기한국연구소소장도 "한국정치사에 있어서 정당은 있었지만 진정한 정당정치의 기록은 없다"고까지강변하고 있다.

정당들을 시대별로 훑어보면 여당은 대통령을 당수로 가졌던 최초정당인자유당을 시발로 민주당공화당 민정당, 그리고 전대미문의 3당통합으로 만들어진 민자당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야당의 법통은 한민당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4·19때의 민주당, 67년 신민당으로 이어졌다. 이때가 가장 활력넘쳤던 단일야당시대를 구가했다. 5공시절 2중대 3중대의 제도정당도 잠시,양김씨의 신한민주당을 거쳐 여소야대 국회였던 13대국회때의 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으로 계속된뒤 지금의 민주당까지 왔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자민련과 새정치국민회의등의 난립시대를 맞고 있다.

그러면 이제 한국정치는 어디로 나아가야하는가. 21세기가 불과 5년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정치의 지향점은 역시 갈라진 남북을 잇는 민족국가 건설과 시민사회형 복지국가건설이다. 정부는 작고 강력하면서도 서비스체제와효율적인 경영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깨끗한 사회,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과창의적인 시민참여 사회 구축,생산적인 국회운영도 그 절대적인 바탕이다.한국정치의 구체적인 향후 과제는 누적된 적폐의청산에서 출발해야 한다.서울대 이정복교수는 "우리나라가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과거 군사정권의통치를 극복하지 못했다"면서 50년동안 정치결산시 반성해야 할 대목으로 남북대결로 인한 민족역량소모,군사정권의 병폐,부정부패,군정치개입,민주주의정치의 미숙, 정치세력의 파당성과 사당성을 거론했다.

정치학자들도 당장 일인중심의 권위주의,정치철학이 배제된 무원칙한 정치권의 이합집산,폐쇄적인 보스정치와 지역할거주의 병폐를 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정당은 내부민주화추진,정책정당으로의 변모,정치인 자질향상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시민들의 높은 정치의식발휘는 필수토양이다.우리정치는 이번 지방자치제실시로 도약했지만 한번의 기회가 또 다가오고있다. 97년 대통령선거다. 우리는 헌정사상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기때문이다. 경북대정치학과 윤용희교수도 "누가 승리할지는 몰라도 야당이 집권할 수 있고 집권당이 야당이 될수있는게 민주주의의 활력이며 요체"라고 역설했다. 이는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문화의 시금석이 되기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50년을 극복,이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치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정치인과 국민모두가 역량과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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