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 기고(김태우)-뱃머리를 돌려라

북한에 쌀을 보내는 정부의 절차는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다. 무슨 정치일정에 쫓기기나 하듯 선적을 서둘러 '6·27 선거용'이라는 오해를 자초하더니만, 국회비준이나 여론확인 등은 아예 생략해 버렸다. 국내에도 극빈자가 많고, 기상이변에 대비하는 비축미 증가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는중이기에 형평성을 무시한 결정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턱없는 북한의 오만과 이를 무원칙적으로 수용한 우리 정부의 비굴함이다. 북한을 개방시키기 위해 양보해야 한다는 원칙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협상이란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하고, 지나친 양보를 불허하는 의지를 과시함도북한을 상대하는 훌륭한 협상자산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북한은 어떠했는가. 쌀을 싣고 북한에 도착한 '씨아펙스'호에 인공기 게양을 강요했고, '우성호 선원 귀환'이라는 돈안드는 화답도 외면했는가하면, 중국에 체류하던 안승운목사를 피랍했지 않았던가. 8월2일 5천t의 쌀을 싣고 청진항에 도착한 '삼선 비너스'호와 선원이 북한에 억류돼 낭패를당했다. 북한은 한 선원이 군항도 아닌 청진항을 촬영한 것을 '정탐'으로 몰아붙이면서 "그래도 쌀은 계속 보내라"고 고함치고 있질 않은가. 북한의 부랑아짓을 보면서 우리 정부의 원칙없는 양보가 더욱 한심스럽다. 한국산 표시도 금지된 채 북한주민은 누가 보낸 쌀인지도 모르고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쌀보내기는 강행되었어야 했던가. 군량미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있었다고는 하나, 주민이 먹을 것이 없으면 군량미를 줄여야 하고, 또주민이 먹을 쌀이 확보되면 군량미도 쌓이는 것이 아닌가. 무엇이 다른가.이제 뱃머리를 돌려야 한다.

**지나친 대북 저자세**

지나친 대북양보라는 면에서는 경수로문제도 다르지 않다. 6월13일 미북간회담에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노형을선정하기로 합의되었고,KEDO가 이미 한국전력을 주계약자로 선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의 중심역할'이 보장된다는 것이 낙관론자들의 주장이기는 하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내비친 정부의 비굴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조원이 넘는 원자로를 공짜나 다름없는 '20년 무이자 상환'으로 제공하는 입장인 우리가 '통일에 보탬이 되는 한국형제공'을 주장한 것은 당연했지만 북한은 이러한 체면마저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기술로 만드는 원자로가 무슨 한국형이냐" "남한의 원자로를 가져가라고 강요하면 독자적 핵활동을 재개하겠다"등의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싫으면 관둬라'는 배수진을 깔고 있었어야 할 우리측의 공노명 외무장관이 4월에 내어놓은 것은 '경수로 특구'였다. 북한이 원하는대로 자재와 사람을 해상으로 수송하여 북한이 금을 쳐놓은 해안지역에 원전을 지어주겠다는 식이다. 통일에 도움이 되고 안되고와는상관없는 성과주의적 발상이었다.

북한이 KEDO와 정식 공급계약을 맺을때 새로운 트집거리를 내놓지 않을까.핵심부분을 미국 감리회사에 맡겨 '껍데기 한국형'이 되지 않을까. 북한이갑자기 한국 기술진들을 쫓아낸다면 보상받을 길이 있는가. 걱정들이 쏟아지는 마당에 7월19일 원자력연구소는 '철저한 한국형'을 고집하던 이 병령 원전프로젝트그룹장을 갑자기 해임시켜버렸다. '수월하게 넘어가기'를 원하는미국의 눈치를 본 결과가 아니냐는 설득력있는 추측이 나돌았다. 읍참마속의도인지 비굴의 상징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쌀을 실은 배도뱃머리를 돌려야 하고 북한이 더 이상의무례를 범한다면 우리의 경수로가북한을 향해서도 안된다. 아울러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일건주의적 여론호도도 없어야 한다.

**일건주의는 이제 그만**

우선 경수로 제공이란우리의 본질적 핵주권개선과는 무관한 지엽적 사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규명되지 않은 북한의 과거핵, 북한만이 보유한 화생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능력, 한국만이 농축이나 재처리시설을 가지지 못하도록 되어있는 자학적 비핵정책, 중단된 원자력추진 잠수함 건조계획등 많은 국익사안들이 해금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걸핏하면 동해에다핵폐기물을 버리는 러시아와 핵실험을 강행하는 중국에 대해서는 항의없이지켜만 볼 것인가. 그래서 북한에 한국형 경수로만 지어주면 핵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분위기를 만들어간다면 이는 일종의 여론호도에 해당한다. 쌀만보내면 남북한에 획기적인 전기가 만들어질 것인양 몰아갔던 얼마전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통일에 보탬이 안되게쓰일 3조원이라면 대구경제건설에내놓는 편이 낫다.

〈국제평화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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