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고속도로를 벗어난다. 어느덧 해가 서산마루에 걸린다. 지방도로로나서자, 길이 뚫린다. 차가 제법 속력을 낸다. 짜증을 내던 짱구가 콧노래를흥얼거린다. 주위로 높은 산이 불끈불끈 솟는다. 강원도는 산이 많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산과 산 사이 협곡으로 차가 속력을 보탠다. 상수리나무, 물푸레나무, 들메나무, 느릅나무가 차창으로 지나간다."할머니 만날 생각하니 어때?"
짱구가 묻는다.
"어떠냐구? 할머니가 나를 보면…"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나는 말을 이을 수가 없다. 가슴이 벅차다. 할머니를 만나도 나는 말을 못할 것 같다. 부끄러워 숨고 싶다. 그 생각만 해도 화끈해진다.
"할머니 뵈오면 큰절부터 올려. 할머니가 반가와서 널 안고 우시더라도 넌울지마. 사내가 울면 안돼"
"울고 싶을땐 울어야지. 남자라고 눈물이 없나 뭐. 내가 마두오빠라면 부등켜 안고 펑펑 울겠다. 집 떠난후 얼마만의 귀향인데 눈물만큼 진실한게 어딨어. 세상이 가식투성인데"
순옥이가 대꾸한다. 어느사이 잠이 깨었다.
"난 눈물샘이 말랐어. 열두살 땐가, 고아원을 뛰쳐 나올때, 난 울지 않기로 결심했어. 어떤 슬픔을 당하더라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눈물을 안흘리기로 맹세했지"
"그 맹세 지금까지 지켰어"
"지켰어. 어느 국산영화에서 그러데. 눈물은 값싼 동정심, 센치멘탈, 감상적 최루탄이라구"
"유식하네"
"이 바닥서도 유식해야 출세해. 이것 저것 챙겨두면 어디 남주나"나는 자주 운다. 할머니가 보고 싶을때가 그렇다. 할머니 생각만 하면 코끝부터 찡해진다. 걸어서라도 아우라지로 돌아가고 싶었다. 할머니를 만나면실컷 울기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싶었다. 엿장사를 따라 나선 뒤부터, 대전 지하실 슬리퍼공장, 부랑아수용소,풍류아저씨와 거지생활, 멍텅구리배를 탄 바다에 갇힌 생활, 거기서 만난 강훈형, 항구에서의 조폭생활, 종성시로 올라와서…. 참으로 길고 긴 사연이다. 그 이야기를 다 들려줄 수 없을 것 같다. 말이 되어 술술 풀릴 것 같지않다. 그럴땐 울어버릴 수밖에 없다. 울음으로 대신 할 수밖에, 방법이 없다.
"오빠, 고향간다는 거 실감나"
"실감? 나 아우라지로 가고 있어"
정말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를 만날 일도 그렇다. 그 사이 할머니가돌아가시고 없으면 어쩌나 싶다.경주씨는 할머니가 살아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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