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재로군. 비행기가 넘던 산인가. 아님, 비행기나 넘을 수 있다는산인가"짱구가 말한다. 길갓 팻말이 지나친다. 아우라지 사람들은 그런 말을 했다. "비행기재 넘어 서울로 갔다 왔지""팔도 천지 험한 재도 많겠지만 비행기재만한 고개도 드물거다. 고물 버스가 낭떠러지 잿길로 부르릉대며 굽이돌땐 간이 콩알만 해져"그런 말을 듣다 새애가 물었다.
"비행기가 발명 안됐을 땐 잿길 이름이 뭐예요?"아버지가 대답했다. "성마령(성마령)이라 했지. 잿길 마루에 오르면 별을 만질 수 있다는 뜻이야. 그만큼 높고 험한 재지. 할머니가 부르는 아라리 노래에도 성마령이 나오지 않니. 아질아질 성마령아/야속하다 관음베루/지옥같은 정선읍내/십년간들 어이가리…"아버지가 '정선아라리'를 읊었다.
비행기재는 별을 만질 수 없다. 포장된 넓은 길이다. 승용차가 수월하게오른다. 화물차와 버스를 가볍게추월한다. 굴이 나타난다. 승용차가 굴 안으로 들어간다. 긴 굴이다. 굴 안이 냉동실 같다. 찬바람이 몰려든다. 순옥이가 기침을 한다. 저만큼 굴 입구가 보인다. 조그만 밝은 구멍이 점점 커진다. 승용차가 굴을 벗어난다. 내리막길이다. 협곡은 그늘이 짙게 내렸다.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상쾌하다. 산 정상께를 질러 넘는 높드리다.단풍나무, 옻나무, 노박덩굴은 벌써 붉다. 피나무잎, 물푸레나무잎, 가래나무잎은 누른색으로 변했다. 단풍은 산 위쪽부터 지기 시작한다. 소나무와 분비나무 푸른 잎새 사이,빨갛고 누르게 단풍이 든다. 날다람쥐 한마리가 소나무에서 소나무로 건너뛴다. 다람쥐는 쥐를 닮았다. 쥐는 나무에 오르지 않는다. 두더지는 흙을 판다. 다람쥐 중에 날다람쥐는 새를 닮았다. 새처럼 하늘을 난다.
"얼마만에 보는 숲인가. 중학교 소풍 때, 광릉 식물원에 가보고 처음이네.너무 좋다. 여기서 죽고 싶어"
순옥이가 읊조린다. 에이즈 이야기를 할때 순옥이는 죽고 싶다고 말했다.그때는 술에 취해 있었다. 지금은 술에 취해 있지 않다.
"팔자 좋은 소리하네. 죽기가 쉬운가. 살기보다 힘들어. 소년원에 처음 들어가 강짜를 부리다 형들한테 다구리탔어. 그때 칼로 배를 갈라 죽으려 했지. 그래도 안죽더라. 지금도 내 배때기엔 일자 흉터가 있어"짱구가 말한다.
"그럼 내가 시범을 보여주지"
"사진 찍어뒀다 안죽으면 보여줄께"
"그렇게는 안될걸"
"재수없는 소리 집어쳐"
승용차가 급커브를 돈다. 바퀴가 찌익 끄는 소리가 낸다. 차는 텅 빈 숲길을 맹렬한 기세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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