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묵직한 사회적주제 정면 도전

얄팍한 내용과 관능적인 소재등 소설의 상업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묵직한 사회적 주제를 비켜가지 않고 정공법으로 다룬 정찬씨의 '아늑한 길', 안혜숙씨의 '창 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등 두 권의 소설이 나와주목된다.정찬의 소설집 '아늑한 길'(문학과 지성사 펴냄)은 요즘 드물게 정공법적인 문제의식과 소설적인 긴장을 유지하는 작품들을 담고 있다. '아늑한 길''슬픔의 노래' '새'등은 광주 항쟁과 관련된 가해자와 피해자의 고통스런 비극적 삶을 다루고 있다. 이들 작품들에 등장하는 가해자들은 그들이 광주 학살의 하수인으로 동원돼무고한 시민에게 무력을 행사하거나 만행을 자행한후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 역시 고통을 겪는 피해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종이날개''산다화''별들의 냄새'등은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잃은 불행한 여인이 결국 종말론에 빠지게 되는 운명적 비극, 댐 건설로 집과 농토와 고향이 물 속에 잠겨도시의 노동자로 전락한 후 열악한 작업 환경 탓에카드뮴중독으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등 기술적 산업 문명에 희생된 사람들의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씨는 현대 문명의 폭력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불행 극복과 관련, 섣불리 낙관적인 전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상처와아픔이 치유될수 없는 것은 그 원인이 개인에 있지 않고 사회와 시대에 있기때문이다. 정찬의 소설들은 그러나 인물들의 참담한 불행과 아픔을 증언하면서 그것의 근원과 상처의 원인을 끈질기게 해부하려는 노력을 보여줌으로써한가닥 구원의 가능성을열고 있다고 보여진다. 정씨는 '기억의 강''완전한영혼'등의 소설집을 냈으며 올해 제26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안혜숙씨의 '창 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찬섬 펴냄)는 이념이 사라진시대에 무의미와 허무의 늪에서 헤매는 인간들의절박한 실존을 다루고 있다. 안씨는 여성 작가로서는 드물게 여성적 감수성과 문체 미학에 치중하지않고 묵직한 주제 의식과 이야기 전개에 비중을 둔 소설쓰기를 보여준다. 표제작인 '창밖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는 성폭행당한 딸의 앙갚음을 위해 살인하게 된 중년여성이 수감돼 느끼는 존재감 상실을 그리고 있다. 비행청소년인 딸로 인해 고통을 겪는 일선 형사를 그린 '빈 나뭇가지', 이데올로기가낳은 비극을 그린'아버지의 임진강', 격무 속에 육신을 마모해버린 직장인의극한적인 불안감을 그린 '돌배꽃 피는 배냇골'등 각종 사회 문제들을 소박하면서도 객관적인 필치로 다루고 있다. 듀엣 '나나에 로스포'의 멤버로 유명했던 안씨는 '해바라기''고엽'등의 장편소설을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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