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 데스크-姜健泰

"[몰래 쓰레기]"

할리우드의 명우(名優) 찰턴 헤스턴이 주연한 혹성탈출 은 핵전쟁으로 멸망한 지구에서 인간의 자리를 차지한 원숭이 세계를 다룬 10여년 전의 필름이다.

인간의 탐욕과 경쟁, 국가간의 집단이기주의가 몰고올 지구종말을 경고했던 이 영화는 실로 원숭이와 인간의 역전(逆轉), 원숭이 세상에서는 사람이 원숭이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그럴 듯하게엮어냈었다.

양심이 사라진 사회

지난 3일 밤 MBC-TV 쇼 …일요일 밤에 의 이경규가 간다 코너를 본 시청자들은 충격적이고감동적인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 전날밤 미리 녹화했던 이 프로에서 개그맨 이경규가 찾아간 현장은 새벽의 서울시내 길바닥.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심야의 횡단보도 신호등에서 파란불 을 지키는 운전자에게 대형냉장고 1대를 선물하겠다 는 것이 이경규의 멘트 였다.

새벽 1시, 수많은 차들이 파란불을 무시하고 쌕쌕 지나갔다. 잠시 서는 듯, 드디어 TV의 주인공이 되는구나 하다가는 놓쳐버렸다. 통과…통과…였다. 이경규는 답답했다. 코미디프로를 보던시청자들도 갑자기 심각해졌다. 새벽3시, 경규가 한냥짜리 황금열쇠를 덤으로 얹었다. 그래도 없었다. 폭 10m의 횡단보도니까 10초만 참으면 냉장고와 황금열쇠는 내것 인데…, 우리의 숨은양심 은 꼭꼭 숨고 없었다.

그런데, 무려 3시간 15분만인 새벽 4시 15분, 아주 작은 차 한대가 스르르 멈춰섰다. 조금 움직이는 듯 시청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던 그 차는 드디어 10초의 파란불을 지킨 후 출발했던 것이다.

당연함이 주는 감동

한번더 그런데… , 정작 우리 감동은 마침내 나타난 원숭이 때문이 아니었다. 신이 나서 막아선이경규 앞에 운전석 유리창을 내린 주인공은 놀랍게도 거리의 인형팔이, 장애자 부부였다.웃는다는 얼굴이, 괴롭게 일그러진 뇌성마비 부부였던 것이다. 말한다는 표정이, 아이들이 놀라엄마 뒤로 숨을 그런 두얼굴이었다.

아이가 둘, 그들은 말했다. 파란불이니까 우린 늘 지켜요 우리 식구들은 감동했다. 딸아이는눈물까지 글썽였다. 우리만 그랬다면 싱거운 친구라는 핀잔을 들었을 터였다. 지난 일요일(10일밤) 같은 시간, 시청자들의 쇄도하는 주문에 MBC는 앙코르방송을 해야 했다. 사람의 감동은 뭐그리 거창한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자의 마음도 장미 한송이에 무너지듯 감동의 시작은 작은 것에서 그렇게 왔다. 실로 원숭이와 인간의 역전(逆轉), 장애인과 정상인의 뒤바뀜이었다. 감동의 뒤편에서 우리는 부끄러웠다. 횡단보도 앞에서 늘상 우리는 1백m 단거리 선수 였지 마라톤선수가 아니었으니까.

요즘 대구시내 온 동네마다 지독히도 지켜지지 않는 몰래쓰레기 의 버려진 양심에서도 원숭이와인간이 뒤바뀐 것을 읽게 된다. 백원짜리 동전 몇닢의 규격봉투 값이 아까워서 아무렇게나 넣어버린다면 우리 주부들의 양심은 얼마나 싸구려인가. 그것도 도둑 고양이처럼 발뒤꿈치 들고 나와 앞뒤좌우 살펴보고 남의 집 전봇대에 툭던지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불가피한 극약처방

그래서 요즘 주택가에선 주차시비와 함께 쓰레기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단속 공무원에게 들킬라치면 학력과 빈부와 나이와 미모에 관계없이 우리네 주부님들은 뻔뻔하다. 왜 나만 잡아요!대구 북구청은 몰래쓰레기에 맞서 불법쓰레기를 일단 치우지 않기로 하는 극약처방을 최근에 내렸다고 한다. 자칫 행정의 포기로 질책받을 일이기도 하지만 쌓인 쓰레기 때문에 동네 주부들끼리 대판 싸움이라도 나야 정신들 차리지 않겠느냐 는 기막힌 주장에 박수를 치고픈 심정이니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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