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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세계-밥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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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몽크는 럭키 밀린더 밴드에서 디지 길레스피와 활동했고 콜맨 호킨스와도 연주를 했지만 53년까지는 거의 음반을 남기지 않았다. 그중 일부가 블루 노트사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대시절에 이미 밥의 선구자로 인식되기 시작한 몽크가 이 당시 거의 녹음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할 정도이지만 상대적으로 그의 개성이 너무 강했다는데 그 근거가 있다. 밥이 활성화된50년대초에도 몽크보다는 버드 파웰이나 조지 월링턴, 알 헤이그 같은 피아니스트는 잘 팔렸지만몽크는 아니었다. 그의 음악적 소신은 대단한 것이어서 자신의 신조와 반하는 어떠한 연주를 하지 않았고 그런 만큼 음반을 취입할 기회가 적었던 것이었다.

50년대 중반에 들면서 그의 가치를 인정한 선구적인 연주자들과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니 롤린스, 자니 그리핀, 게리 멀리건, 존 콜트레인등과 같은 색소폰 대가들이었다. 'Monk'sMusic'(57년, 콜트레인), 'Mulligan Meets Monk'(57년, 멀리건), 'Misterioso'(58년, 그리핀)등이이 당시 나온 대표작들이며 특히 그의 특이한 주법은 콜트레인에게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59년 테너 색소폰 주자인 찰리 라우즈와 결성한 4인조는 몽크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가져다준 계기가 됐다. 이 4인조는 프랑스, 스웨덴, 이탈리아등 세계 순회공연을 통해 다양한 음반을 남겼으며 70년 라우즈가 떠나기까지 11년간이나 지속됐다.

71년 몽크는 역사상 최고 밴드 구성이라는 취지에서 결성된 '재즈의 거인들(The Giants OfJazz)'에 참여해 2장의 음반을 남겼다. 몽크와 함께 디지 길레스피(트럼펫), 소니 스티트(테너, 알토 색소폰), 카이 윈딩(트럼본), 알 맥키번(베이스), 아트 블래키(드럼)등 6명이었으며 연주 수준보다는 이 밴드에 가담한 면면이 당대 최고의 연주자라는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이후 몽크는 별다른 활동을 벌이지 못했고 75년경에 발병해 오랜 투병생활끝에 82년 사망했다.〈鄭知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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