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와 영화사이(22)-데이비드 린 '닥터 지바고'

고르바초프가 물러남으로써 옛소련이 사라진지도 만 6년이 지났다. 그러나 기대했던 민주정부가아닌 과료체제가 다시 등장하고 자본가들이 판을 치고 있어서 러시아의 미래는 여전히 어둡다.옛소련을 지배한 비능률의 표본인 행정관료제도가 여전히 러시아를 지배하여 외형의 변화와는 달리 본질적인 개혁은 아직도 멀다. 이는 러시아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주의진영이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물론 관료국가주의의 폐해는 사회주의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에도 뿌리깊다. 어쩌면21세기의 최대과제는 그러한 관료국가주의의 극복과 시민참여주의의 정착일 것이다.옛소련이 붕괴되기 전에도 옛소련에 대한 비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세계사를 뒤바꾼 러시아혁명기의 방황과 정신적 고통 그리고 사랑을 그린 파스테르나크의 '닥터지바고'는 국제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어 노벨상을 받았고 영화로 만들어져 전세계에서 상영되었으나, 소련에서는 오랫동안 읽히지도 상영되지도 못했다. 소련이 해체된 지금 러시아에서 그것은이미 고전이 되었으나 얼마전까지도 그것은 반정부적인, 반혁명적인 작품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나소설이 발표되면서 그것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비견된다는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특히 '전쟁과 평화'만큼의 다양한 러시아인들이 등장하여 혁명의 비참을 증언한다.영화는 1905년 터진 '피의 일요일'의 무참한 살륙으로 시작되어 1917년의 볼셰비키혁명 그리고내란으로 이어진다. 그 격변 속에서 문명은 물론 인간 자체가 파괴된다.

아직까지 혁명에 대한 예찬론이 우리 주변에 있으나 적어도 지금 러시아에서 그것은 사라졌다.'닥터 지바고'는 격동의 러시아혁명을 배경으로 한 순수한 시인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이다. 사랑은 혁명을 초월한다. 시인은 혁명으로부터 내면을 수호하고자 한다. 그는 정치는 일시적이나 정신과 감성 그리고 창조성과 사랑은 영원하다고 주장한다. 원작과 영화는 그 주제에서 당연히 일치한다. 지바고는 전통적인 자아추구의 시인으로서 혁명의 틀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틀에 박힌다는것은 인간의 최후이며, 인간에 대한 사형선고이다"그러나 지바고는 혁명을 거부하거나 반동하는입장은 아니다. 혁명의 투쟁은 라라의 남편인 장군과 애인인 변호사로 상징되고, 지바고와 라라의사랑은 혁명을 초월한다. 영화에서 그런 분위기는 더욱 집약적으로 전달되나 소설은 정신적 고뇌의 묘사에 훨씬 충실하다.

따라서 소설과 영화는 사실 너무나 다르다. 소설에는 수많은 인물의 길고 긴 철학적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나 영화는 혁명속 사랑의 예찬으로 압축된다. 영화도 3시간14분에 이르는 대작이나소설의 내용을 다 묘사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영화만을 보고 파스테르나크를 말할 수는 없다.문학으로서의 지바고는 소설의 정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박홍규〈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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