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보사태 외압 '몸통' 사라져 불신만 가중

한보 특혜사건은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도 불구, 전대미문의 사건답게 많은 의혹이 그대로남아 '짜맞추기 수사' 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5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금융대출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외압의 실체'를 비롯, 풀리지 않은 의혹들을 정리해 본다.

① 대출외압의 '실체'는 없는가.

검찰은 구속된 신한국당 홍인길(洪仁吉)의원이 한보 특혜대출에 주도적으로 압력을 행사했고 그'윗선'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과연 홍의원의 정치적 위상으로 볼 때 특혜대출 결정과정에서 4개 시중은행을 좌지우지할정도의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에는 적잖은 의문이 생긴다.특히 홍의원이 자신을 '바람에 나부끼는 깃털' 로 비유했듯이 홍의원 자신은 심부름꾼에 불과하고 '핵심 배후'는 따로 있을 것이란 것이 일반의 추측이다.

홍의원을 포함,검찰이 발표한 황병태(黃秉泰).정재철(鄭在哲)의원-신광식(申光湜).우찬목(禹贊穆).이철수(李喆洙) 전.현행장이라는 한보 대출커넥션과 이들이 받은 30여억원의 뇌물규모로는 천문학적액수의 대출경위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이야기다.

② 한보대출및 정책지원 관련, 관계 수사 미진

광범위한 관계 수사에도 불구하고 김우석(金佑錫) 전내무장관외에 다른 전.현직 경제관료는 전혀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오히려 김전장관의 경우 민주계 실세이고 각료인점 때문에 '구색갖추기' 차원에서 '희생양'이 된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다루지 않은 89년 12월 아산만 매립허가를 차치하더라도 △외화대출 추천 △당진제철소 부지 추가매입 △코렉스 공법도입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참여등 일련의 인허가과정에서 "행정상 위법행위가 발견되지 않아 사법처리가 곤란하다"는 검찰의 발표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③ 비자금 규모 및 사용처

검찰은 한보철강에 대한 여신 5조여원중 당진제철소 시설투자 비용인 3조5천억원과 운영자금 1조2천억원을 뺀 나머지 2천1백36억여원이 비자금으로 유용됐으며, 이 비자금이 △계열사 인수및 신설 △해외진출 경비 △정총회장 전처 이혼위자료 △로비자금등에 사용됐다고 밝혔으나 나머지 2백50억여원의 행방이 묘연하다.

검찰은 그러나 "앞으로 이 돈의 용처가 밝혀질 지 의문"이라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다지금까지 비자금 용처추적에 있어 정밀 계좌추적 방식을 사용하지않은 채 정총회장의 입에 의존해온 수사방식에 비춰볼 때 그대로 덮어질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④ 금융권 수사 축소

검찰은 한보철강에 2천∼3천억원씩을 대출해주고 그 대가로 커미션을 수수한 신광식 제일.우찬목조흥.이철수 전제일은행장등 3명만을 구속하는 선에서 금융권 수사를 끝냈다.

신.우.이행장이 대출해준 8천7백억여원을 제외한 나머지 4조여원의 대출에 대해 검찰은 커미션 수수 없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히고 있으나 납득하기 어려워 은행권의 반발을 의식한 축소수사로 비쳐진다.

대출커미션 수수비리가 96년에만 집중돼 있는 점도 의문이다.

검찰은 한보철강 당진제철소 건설 초기에는 정부의 산업기술 정책방향에 따라 은행의 대출 지원이 자발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으나 금융계는 당시에는 대출커미션수수가 보다 폭넓게 행해졌던시기라며 수긍하지 않고 있다.

⑤ 정치인 선별적 사법처리 논란

검찰 발표대로 정총회장이 신한국당 홍인길.황병태.정재철의원과 국민회의 권노갑의원에게만 돈을건넸을까.

평소 여.야를 가리지 않고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제공해온 정총회장의 로비스타일로 볼 때 쉽게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검찰은 특히 95년과 96년의 국정감사 비리만을 문제삼았다.

그러나 수서 비리가 터진 91년 25건이던 한보관련 국감질의 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시점이 93년이었고, 특히 한보철강에 1조6백75억원 상당의 대출이 이뤄진 94년에는 여야 통틀어 단 한명의질의의원도 없었던 정황에 비춰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⑥ 정보근(鄭譜根)씨 등 한보 수사 미흡

한보그룹의 2인자로서 로비에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정보근회장이 사법처리되지 않고정태수총회장과 김 전재정본부장등 2명만이 구속된 점도 의아하다.

이를 두고 부도직후 그룹 재건을 현장 지휘중인 정회장을 사법처리하지 않는 조건으로 정총회장으로부터 정.관계 비호 인사의 명단을 넘겨받는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⑦ 김현철(金賢哲)씨 해명성 수사 논란

검찰은 세간의 의혹을 받은 김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조사여부에 대해 "떠도는 설만으로 수사할수 있느냐"며 소극적 입장을 보이다 명예훼손 고소사건의 고소인형식을 빌려 김씨에 대한 수사에착수키로 했다.

이때문에 '성역있는 수사'라는 비판와 함께 향후 '한보청문회'와 관련, 김씨의 입장을 지나치게고려한 '정치적 수사'라는 혹평을 받고 있으며 벌써부터 김씨에 대한 해명성 차원의 수사로 그칠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⑧ 수사기밀 유출설

수사초반부터 잇따라 수사기밀이 유출돼 언론에 보도됨에 따라 '각본수사' 혹은 '음모설' 의혹을샀으나 그 진원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정치권 외압의 주범격인 권노갑.홍인길의원의 억대수수 사실을 비롯, 김덕룡.김상현의원등일부 대선주자들의 정치자금 수수설이 수사발표에 앞서 언론에 보도되면서 진원지가 검찰내부,청와대등 유관기관, 한보그룹등으로 압축되면서 갖가지 억측이 난무했었다.

수사중반에 이르러 김덕룡의원등은 "정치권내에 반사이익을 챙기기 위해 수사과정을 악용하는 세력이 있다"는 주장과 함께 '음모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영삼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도 수사막바지에 불거진 자신의 연루설에 대해 수사내용 유출과 무관하지 않다며 여권내 파워게임에서 특정계파의 와해를 노리는 세력의 음모설을 주장했다.최병국(崔炳國)중수부장도 유출설이 수그러들지 않자 수사보안의 문제점을 시인하고 자체진상조사에 나섰으나 결국 진원지를 찾아내지는 못한채 수사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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